정지현, 철거 현장 06 외부, 2013
허무하게도 집이 가지고 있는 그럴싸한 의미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한 덩어리 콘크리트다. 더 정확하게는 투자 상품처럼 평당 가격에 집착하게 만드는 아파트 거래의 현실이 집을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특이하게도 정지현은 이 콘크리트 구조물에 집착하는 작가다. 그는 굳이 집의 의미나 장소의 상실을 들먹이는 것이 의미 없다는 듯, 우리가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집의 은밀한 내부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이제 막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의 지하공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거나 쇠파이프가 널브러진 이 차가운 공간은 필시 지하 기계실이나 주차장으로 변모하겠지만, 우리가 늘 보던 아파트 광고의 현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네모난 덩어리들을 소유하지 못해 안달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투자가치를 높인답시고 허물어뜨린다.
작가는 새로운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재개발의 운명을 맞이한 아파트나 건물에도 눈길을 돌린다. 철거 예정인 곳에 도둑처럼 몰래 들어가 작가가 원하는 방에 빨간색 페인트를 칠한 뒤 일단 사진으로 촬영한다. 그리고 이 건물이 철거되면서 점점 작은 덩어리로 쪼개지는 빨간색의 흔적들을 지속적으로 기록한다. 그의 일련의 작업은 결국 한 점의 콘크리트로만 남아서 사라지는 빨간색 방의 운명을 추적한다. 건물 잔해 속에서 빨간색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생각보다 허무하다. 이렇게 사라져 버릴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그토록 집착하고 발버둥치는 것일까라는 성찰은 이 시점에서 찾아온다.
작가는 온기를 걷어낸 물질 그 자체로서 집의 생성과 소멸에 천착하고 있는데, 이 건조한 사진들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집에 대해 지니고 있는 속물적 잣대의 허를 찌르면서 집의 본질을 묻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