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용, 기륭전자 앞, 2006
사진은 빛 없이 태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사진가들은 빛에 빚을 지고 산다. 그러나 빚을 지는 게 어디 빛에게뿐일까. 숨막히는 풍광이든 가슴 저린 삶의 현장이든 사진가는 빛이 비춰주는 모든 대상에게도 마음의 빚을 진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 ‘빛에 빚지다’라는 이름의 달력은 이 빚진 마음에서 시작했다. 계기는 용산 참사였다. 현장을 드나들던 사진가들이 달력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자 얼굴도 모르던 수많은 이들이 선뜻 선구매를 해줬다. 그들의 이름도 달력에 함께 새겨졌다. 이렇게 실제작비용을 뺀 모든 판매 금액은 용산을 거쳐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등에 전해졌다. 그들에게 제일 큰 위안이 되었던 건, 후원 금액보다도 달력에 새겨진 이름이었다.
이 달력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에서 만든다. 달력 한 권이 한줌 빛만큼의 온기를 불러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붙인 이름이다. 빛에 빚지지 않은 사진가는 없기에 당연히 이 모임의 실체도 없다. 유명세와 경력을 떠나 뜻에 동참하는 선후배 사진가들이 때가 되면 철새처럼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 거기에 최소한의 연대를 꿈꾸는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번갈아 달력 제작을 거든다. 이번에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달력이 미처 다 품지 못했던 사진들로 전시를 꾸렸다. 2014년 달력도 함께 판매한다. 19일에는 달력에 뜻을 보태주었던 이들을 위해 참여 사진가들이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 ‘최소한 사진관’도 운영한다.
모임의 별명인 ‘최소한’은 우리가 현실에서 바라는 가장 소박한 기준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소한의 밥그릇은 지켜지지 못하고, 최소한의 윤리조차 없이 용산 비극의 책임자는 승승장구한다. 최소한의 발행만을 꿈꾸던 달력이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