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모든 인간은 늘 아주 단순한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 두려움을 무대에 올린다. 1974년 그는 미술관 중앙에 섰다. 옆에는 72개의 사물을 올려놓은 탁자가 있었다. 작가는 관객이 마음껏 그 사물 가운데 무엇이든 선택하여 작가에게 어떤 행위든 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 관객은 물을 선택하고, 꽃을 선택해 작가에게 전해주었지만 이내 가위로 옷을 자르고, 가시로 몸을 찌르고, 칼로 목을 베고, 피를 마시는 가혹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울라이, 연인들. 만리장성 걷기, 1988
고향인 베오그라드를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간 그는 울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우베 라이지펜을 만났다. 곧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함께 ‘관계의 에너지’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했다. 울라이가 아브라모비치의 가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아브라모비치가 활을 잡은 퍼포먼스 ‘정지에너지’는 상대에 대한 완전한 믿음을 전제로 한 작업이었다. 둘 사이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화살은 곧바로 아브라모비치의 심장을 관통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공포의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바뀌었고, 작가의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다. 12년간 이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별을 맞이했다. 이들은 3개월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만리장성 중간으로 걸어갔고 그 길에 만난 두 사람은 작별의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우리는 항상 삶 속에서 좋아하는 것만 합니다. 그래서 변하지 못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렇게 살다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해결책은 제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혹은 제가 모르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거나 그래서 실패를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신의 육체가 다다를 수 있는 한계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가가 단 한번 경험할 수 있는 퍼포먼스 끝에 만나는 것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다.
김지연|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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