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정복에 대한 이야기, 정복욕에 대한 이야기다. 김웅현은 해마다 새해 결심을 하듯 산에 다녀왔다. 등산을 즐기는 그가 관련 서적에서 발견한 일종의 기념화 ‘체르마트 클럽룸’에는 알피니즘의 황금기에 활약한 산
김웅현, 안자일렌, 2011, 혼합재료, 가변설치
악인 18명이 그려져 있었다. 한 장의 이미지 속에서 그는 숭고한 도전정신을 발휘해 목숨 건 사투 끝에 산을 정복한 이들의 쾌감을 마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위험하다고 해도 오늘의 산행은 레포츠 정도의 무게감을 가질 뿐이다.
작가는 정복에 대한 역사적 위상과 대상이 변한 것을 알았다. 그는 등반뿐 아니라 세계대전, 산업개발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흔적들을 조사하면서 ‘정복’이라는 행위를 시대에 따라 다른 형식을 갖추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각적 클리셰라고 보았다. 거기에는 ‘신체’가 있었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오늘의 환경에서도 여전히 사건의 중심에는 신체가 있다. 원시시대처럼 수렵 채집에 육체를 사용하는 대신, 우리는 가상의 세계와 접속하기 위해 몸을 쓴다. 그 과정에서 신체는 어깨 결림, 체중 증가, 시력 저하를 경험한다. 몸이 마주하는 자극은 어떤 활동의 명확한 증거가 된다. 다만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우리 앞에 작가는 과장되게 클리셰를 반복하는 몸을 제시한다.
그는 1865년 난공불락의 마터호른산에 처음 오른 에드워드 휨퍼와 마터호른산 등반을 계획했다. 등반 코스를 구성하고 자금을 모았으며 클라이밍 강습을 받았다. ‘정복’ 행위에 미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공부도 했다. 이후 그는 마터호른을 ‘휨퍼’로 분한 지인과 함께 등반했다. 힘겹게 절벽을 오르고 길을 걷는 여정을 고스란히 영상에 담았다. 그들은 정상에 오를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정복의 쾌감을 누렸다. 영상에는 모종의 성취감도 담겼다. 험난한 등반이 이루어진 장소는 대한민국 어디의 운동장, 가상의 마터호른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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