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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

북촌 8경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현대그룹 계동 사옥을 끼고 오르면 우측으로 언덕이 나타난다. 이 언덕을 오르면 저 앞쪽 담장 너머로 창덕궁 인정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전각들이 겹겹이 쌓여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2008년 서울시에서 지정한 북촌 한옥마을을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점 8곳 중 첫 번째 풍광이다.

 

 

창덕궁 측면을 1경으로 시작하는 북촌 8경은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는 원서동 공방길 2경과 가회동 11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는 한옥 골목길 3경으로 이어진다. 나머지 4~8경은 북촌로를 건너 가회동 31번지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남쪽 사면의 경사지에 벽을 맞대고 길게 이어져 있는 한옥 골목길의 정겨운 모습에 너나없이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연스러운 처마 곡선과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회색빛 기와, 목재가 어우러진 한옥의 아름다움을 서울 한복판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할 따름이다.

 

골목 중간 중간 틔어 있는 공간을 통해 가회동 일대의 밀집된 한옥 지붕들의 모습과 저 멀리 도심 빌딩숲 뒤로 우뚝 솟아 있는 남산타워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4경에서 7경까지 감상하고 마지막 8경인 삼청로로 내려가는 돌계단으로 발길을 옮긴다. 8경인 이 돌계단은 커다란 암반을 통째로 조각해서 만든 계단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구조물이다. 아마도 그래서 북촌 8경에 포함시킨 것 같다.

 

8경에 다다르면서 이때부터 우측에는 또 한 번의 놀라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삼청동의 한옥들을 비롯한 저층의 다양한 건축물들로 구성된 근경, 북악산의 산줄기가 청와대를 거쳐 경복궁과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중경, 그리고 그 뒤로 도심을 향해 물결쳐 내려가는 인왕산 줄기의 원경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풍광은 북촌 8경의 멋진 대미를 장식해준다. 전망대까지 조성한 것으로 봐서 서울시에서는 이 멋진 파노라마를 북촌의 중요한 조망점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북촌 8경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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