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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

가회동 언덕에 서서

지난해 봄 창덕궁 옆에 위치한 조그마한 전시장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전시 중에 잠시 짬을 내어 창덕궁 정문에서 시작하는 북촌길을 거닐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한옥 밀집지역으로 청계천과 종로의 위쪽 지역에 있다 하여 ‘북촌’으로 불렸다. 궁궐에 가까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 경사져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조선시대 권세있는 양반들의 대표적인 거주지가 되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도심으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주택 수요가 크게 늘자 양반들의 거주지는 작은 규모로 분할되어 지금과 같이 벽을 맞댄 개량한옥이 집단적으로 생겨났고 이는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후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다세대주택 등으로 한옥이 멸실되면서 북촌의 경관이 크게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2000년대 이후 주민들은 서울시와 함께 북촌을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거주지로서의 매력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그 덕에 지금은 북촌이 내국인은 물론 외국관광객들에게서도 대표적인 서울의 관광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니 놀랄 만한 절경이 펼쳐진다. 인정전을 중심으로 겹겹이 쌓인 전각들이 고목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연출되어 있다. 북촌8경 중 제1경이란다. 재동 초등학교를 지나 북촌로로 접어드니 도로 좌우로 긴 한옥의 행렬이 드러난다. 이 행렬을 따라 한옥이 밀집된 가회동 언덕길을 올랐다.

4경부터 8경이 거의 한 지역에 모여있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수의 외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 좁은 골목길을 메우고 있었다. 차 한 대나 겨우 다닐 만한 경사진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고즈넉한 한옥들이 겹겹이 중첩되어 강한 투시효과를 보이고 있다.

처마의 자연스러운 곡선과 회색빛 기와, 세월이 묻어나는 목구조가 만들어내는 한옥의 정겨운 모습에 모두들 인증샷을 찍느라 골목이 시끄럽다. 골목길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위쪽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점점이 멀어져 가는 한옥 지붕들 사이로 저 멀리 빌딩숲 뒤로 우뚝 솟은 남산타워는 서울의 중심부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풍경이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