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파리의 거리, 1877년,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아트뮤지엄
인상파 작품의 컬렉터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부르주아의 독특한 시선으로 파리 풍경과 파리인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대표작 ‘비 오는 날-파리의 거리’는 파리 생라자르 역 근처의 더블린 광장을 묘사한 것이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걷는 성장한 남녀들은 스스로를 볼거리, 즉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가시화하기를 좋아하는 근대의 부르주아들이다. 보들레르는 보는 동시에 보여지는 도시의 이런 구경꾼들을 ‘플라뇌르(Flanuer)’, 즉 산책자라고 명명했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오스망 남작에 의해 도시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세의 낡은 건물이 사라지고, 3, 4층의 적당히 높고 세련된 건물이 들어서는 한편 좁고 복잡한 중세의 길들이 넓고 반듯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게다가 하수시설이 개선되니 오물로 질척거리는 더러운 거리가 아니어서 비 오는 날도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포장된 도로는 매끈하고 질척거리지 않아서 비오는 날의 산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특별히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카유보트는 사진의 도움으로 이 그림의 구도를 설정했다. 사진의 스냅샷 기법으로 주요 인물을 오른쪽으로 배치, 크게 확대한다. 왼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도시풍경에 매혹된 시선이다. 남녀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오른쪽 끝 몸의 3분의 1만 보이는 우산 쓴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화면의 정중앙에 최신식 디자인처럼 보이는 초록색 가로등을 배치해 역동적인 구도를 만들고, 밤의 도시가 얼마나 활기가 넘쳤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 뒤로 거리를 가로지르는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상념에 젖어있는 듯하다. 마치 근대인의 고독한 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먼 배경의 인물들은 마치 대기원근법처럼 흐리게 묘사되어 있는데, 앞의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마치 아웃포커싱된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유보트의 비오는 풍경은 우중충하거나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명징한 대기를 흠향하게 만든다. 차도의 블록과 인도의 표면이 물기로 코팅되어 상큼하게 느껴질 정도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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