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안 프로이트, 잠자는 사회복지감독관, 1995년
“나는 작품이 모델들에게서 비롯되기를 바란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작품이 자신에게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가능한 한 모델들의 느낌과 감정에 동감하기를 바랐다는 말이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인 루시안 프로이트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더불어 영국 구상회화의 독보적인 존재다. 베를린 태생으로 나치하의 오스트리아 유태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1933년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런던은 그의 예술적 욕망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한 후 예민하고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철학적 사유와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프로이트는 주로 인물초상을 그렸다. 누드가 아닌 벌거벗은 몸, 공허한 얼굴, 살찐 여자의 몸, 임신한 몸, 상처가 적나라한 조폭의 얼굴 등 그가 그려낸 얼굴과 몸은 그 누구의 것과도 흡사하지 않으며, 미술사의 그 어떤 초상보다도 존재감 있게 다가온다.
프로이트는 어떻게 기묘한 전율을 일으키는 강력하면서도 은밀한 인물들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사실 그는 뛰어난 관찰자이며 유머와 위트를 지닌 매력적인 이야기꾼이다. 어쩌면 그는 인물화를 환상적인 시보다는 비루한 일상에 근간한 소설로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은 우울, 불신과 같은 감정의 레이어는 물론 피로와 권태, 노화와 죽음 같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진실과 대면하게 한다.
여기 소파 위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인간을 보라.
현상학자 메를로퐁티는 몸을 체화된 의식이라고 했다. 한 여자가 살아온 인생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이 그림은 배제되고 소외된 존재로서의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프로이트는 여든이 넘어서도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그만의 엄격한 자기비판과 과대망상적 야망의 조합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그림이 되다>는 루시안 프로이트의 생생한 육성을 경청하게 만드는 귀한 평전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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