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에서 의정부를 지나 서울로 나서자면 포천과 의정부의 경계를 이루는 축석고개를 지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 고개 정상에 이르면 갑자기 가까이 있는 산들과 함께 저 멀리 도봉산의 원경이 하나로 어우러진 멋진 산수화가 눈앞에 펼쳐진다. 축석고개를 내려와 자동차전용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또 하나의 고개인 장암고개를 지날 때에는 앞서 멀리 보이던 도봉산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시시각각으로 계절의 옷을 바꿔입고 눈앞에 나타나는 도봉산의 모습에 종종 빠져들곤 한다.
의정부 장암고개 끝자락과 수락산의 서쪽 끝자락이 만나는 지점에 지난 원고에서 소개한 서계 박세당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글에서는 수락산 계곡에서 바라본 고택의 모습을 그림과 함께 소개했다. 그리고 고택 안으로 들어와 한국전쟁 때 불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랑채의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도봉산의 느낌을 한 줄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나는 서울로 나올 때마다 두 고개에서 마주하는 도봉산의 강한 느낌을 한 번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도봉산의 모습을 이 고택의 사랑채에서 제대로 관조할 수 있었기에 그 감동을 그림과 함께 부연해본다.
서계 박세당 고택의 사랑채는 서향을 바라보고 있다. 대지가 넓어 남향으로 배치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서향을 택한 이유는 서쪽에 도봉산이 병풍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었다. 뒤쪽으로 수락산이 주산(主山)이 되고 사랑채 앞쪽에는 중랑천이 있어 배산임수(背山臨水)에다 앞쪽의 도봉산이 안산(案山)이 되는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옆으로는 수락산 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이 계곡 쪽으로 관어정(觀魚亭)이라는 누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이 누마루에서 창문을 열면 옆쪽의 계곡과 저 앞쪽으로 도봉산의 주봉들이 모두 바라다 보인다. 이 사랑채야말로 서계가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을 벗삼아 글을 쓰고 제자를 가르치며 세월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으리라.
박세당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하여 머리를 깎고 수락산 동쪽에 들어와 은거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을 흠모했다. 그는 김시습이 수락산의 동쪽에 자리 잡고 동봉(東峰·동쪽의 봉우리)이란 호를 쓴 것에 대비하여 서계(西溪·서쪽의 계곡)라 호를 짓고 동봉을 추모배향하기 위한 청절사를 건립하기도 했다.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계곡의 물소리와 아름다운 도봉산에 젖어 세상을 등지고 수락산에 묻혀 살았던 동봉의 삶을 살려 했던 서계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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