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홍은사거리에서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오르다 보면 왼쪽 능선으로 상명대학교 캠퍼스가 올려다보인다. 상명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위쪽으로 200m가량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단아한 정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 일대의 지명을 짓게 해 준 ‘세검정’이란 정자다.
홍제천이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정(丁)자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세검정은 예로부터 멋진 풍광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지금도 홍제천 좌우로 많은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해도 세검정 아래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여전히 멋진 풍광이 뿜어져 나온다. 세검정(洗劍亭)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 김유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경치가 빼어났기에 왕과 사대부, 여염집 자제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노닐며 시를 짓고 바위에 글씨 연습을 하였다. 계곡 위쪽에서 바위 사이를 굽이치는 물결과 쏟아지는 폭포는 많은 선비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유혹하여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조리게 만들었다. 세검정의 가장 멋진 구경거리가 소나기가 쏟아질 때의 폭포 구경이었다 하니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정자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은 예사롭지 않았다 할 것이다.
운이 좋아서일까? 지난해 가을, 내가 이곳을 찾았던 그 날에도 가을치고는 제법 큰 비가 내렸다. 상류인 평창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는 홍제천으로 이어지면서 세검정에 이르러서는 멋진 풍광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정자 아래쪽 마당바위 앞쪽에 놓여진 홍제천을 가로지르는 보를 넘어선 세찬 물길은 세검정 옆을 오르내리는 차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폭포를 만들어 낸다.
지금도 이곳에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과거 이곳을 찾았던 옛 선비들의 서정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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