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들의 우화, 1568년, 154×86㎝, 나폴리 카포디몬테미술관
소경들의 행진이 불안하다.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소경이 넘어지자 그를 믿고 따르던 소경도 앞으로 쓸리며 넘어지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소경들은 곧 자신이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눈치다. 다양한 표정의 얼굴에는 무지에서 오는 천진함까지 엿보인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실제 맹인의 처지는 더 이상 신의 기적을 증거하기 위한 상징적 존재가 아닌, 동정조차 받을 수 없는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그림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성서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마태복음 15장14절, 누가복음 6장39절). 이 말은 원래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우매함을 지적한 말에서 유래하는데, 지도자가 잘못되면 따르는 사람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6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풍속화가인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gel the Elder, 1525~1569년)은 이 그림을 사망하기 일년 전에 그렸다. 당시 그가 살던 도시 브뤼셀은 스페인 통치의 도시로, 폭정의 그늘 아래 놓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혔고, 참수형을 당했다. 브뢰헬은 자신의 그림에 담긴 내용이 지배계급을 자극할까봐 아주 조심스러운 비유와 풍자로 펼쳐 보이고 있다. 실제 브뢰헬이 얼마나 철저하게 맹인들을 관찰했는지, 맹인들의 상태는 경이로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에는 동정심 같은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도 큰 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후경에 배치된 교회는 면죄부를 주는 등 대중을 잘못 이끌었던 당대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바로 앞에 시들어버린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그 사실을 암시한다. 매스컴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말잔치만 풍성한 정치풍경을 보게 된다. 우리가 딱 이 그림의 상태다. 그리스신화 속 테레이시아스 같은 지혜로운 장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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