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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유혹의 메타포, 세이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1891년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신화 속 존재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세이렌은 가장 유혹적이고 환상적인 존재다. 고대의 세이렌은 여인의 머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새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중세의 세이렌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에 물고기 꼬리를 한 좀 더 에로틱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 신비한 바다생물체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였다. 이것으로 남자들을 유혹했고, 유혹의 끝은 죽음이었다.

그런데 유혹당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으니, 오디세우스였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유혹당하고 싶어 했고, 유혹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바로 귀향길에 억류되었던 섬의 마녀 키르케가 알려준 비법 때문이었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의 섬을 지날 때 밀랍을 이겨 뱃사람의 귀를 단단히 틀어막으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면서 오디세우스가 진정 노래를 듣기 원한다면 먼저 몸을 돛대에 단단히 붙들어 매야 한다는 것까지도.

세이렌의 노래는 어떤 것이었길래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이 모두 죽어 나간 것일까? 아마 그것은 노랫소리 그 자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더 많은 것을 알아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유혹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앎(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에게 안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고, 산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백문이 불여일견 즉 ‘Seeing is believing’이 그들의 인식론의 핵심이었다.

라파엘전파의 대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속에는 세명의 세이렌이 등장하는 ‘오디세이아’ 원전과는 달리 여러 명의 세이렌이 등장한다. 부하들은 밀납으로 귀를 막는 것으로도 모자라 헝겊으로 머리를 꽁꽁 싸맸다. 오디세우스는 오로지 자신 혼자만이라도 세이렌의 음성(일종의 지식)을 듣겠다고 고개를 빼고 있다. 머리에는 불운을 쫓기 위한 눈이 그려져 있다. 앎은 불운까지도 예방한다는 거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