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에반스, 아모스의 세상:에피소드 1, 2017, 건축·비디오 설치 ⓒ세실 에반스
“나는 뭔가 중요한 것을 짓고 싶다. 아니,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아니, 나는 나를 표현하고 싶다.” 세실 에반스 작품에 등장하는 건축가 아모스는 뛰어나지만 악랄하고, 좌절과 분노 사이를 오가는 생활에 익숙하며, 능수능란하게 거짓을 말하는 오만함을 즐기는 백인 남성 건축가다. 그는 사회적으로 꽤 급진적인 요소들을 장착한 공동주택을 설계했다. 도시에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고도 남을 이 주택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모스는 “자본주의 시대를 위한 완벽히 개별적이면서도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공간”을 꿈꾼다. 그가 꿈꾸는 생활공간을 만들기 위해 작가 에반스는 ‘이상적 공동사회로서의 집합주택’ 모델로 등장했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마르세유 집합주택, 모듈화의 기수로 꼽힌다는 모셰 사프디의 해비타트 67, 철거 진행 중인 앨리슨·피터 스미슨 부부의 공동주택 로빈후드 가든 등을 모델로 삼았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작가에게 ‘공동주택’은 감정의 여러 케이스를 상상할 수 있는 효율적 장소다.
입주자들은 건축가의 ‘이상’을 따르지 않는다. 신중하게 설계하고 구성한다 한들, 네트워크에 균열이 생기고 인프라가 붕괴되는 일은 낯설지 않다. 건물이 거대해질수록, 개인들은 거대한 규모로 공존하고 건물의 거대한 인프라스트럭처에 결합·의존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은 나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무조건 순응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권리와 시스템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있다. 작가는 이 공동주택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상 가능한 일들을 TV 드라마처럼 펼쳐내며 개인과 공동체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판타지를 섬세하게 무너뜨린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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