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 육체적으로 소멸해 가고 있다. 아무런 기력도 없이 그러나 또렷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숨이 거두어질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그가 머무는 방 안으로는 여전히 햇살이 일렁이고 마당의 나무는 싱그러우며 거실 안으로는 간간이 벌들이 찾아들어온다. 그는 아마도 이 시들지 않는 자연들 품으로 곧 돌아갈 것이다. 그의 감긴 눈과 파인 주름, 성긴 머리칼은 지켜보기에 고통스럽지만 희미한 생명의 상징으로서 한없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그가 느리게 내뱉는 숨은 예순에 얻은 딸과 스물네 살 연하의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시간과 자연의 엄숙함에 대해 온몸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의 딸, 리디아 골드블라트는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조용히 목격한다. 아버지와의 이별을 생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삼겠다는 듯이 모든 사진은 정갈하고 압축적이다. 마흔 장이 넘는 전체 사진 속에는 어떤 설명도 담겨있지 않다. 카메라의 시선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육체와 집안의 평범한 대상들을 번갈아가며 주목한다. 마치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다 숭고하다고 말하려는 듯이. 아버지가 정신분석가였다는 것도, 어머니가 나치에게서 추방당한 유대인이었다는 사실도 그녀의 사진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녀의 부모는 이 모든 굴곡진 혹은 소소한 역사를 거쳐 이제 여리면서도 강한 생명으로서 존재한다. 그녀는 다만 ‘아직 여기에’라는 제목을 통해 육체적 소멸이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아버지는 작업을 마친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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