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 Kertesz, 깨진 유리 원판, 1929 성곡미술관 제공
그도 예술가가 되기 전 고갱처럼 증권 거래소에서 일했다. 시련을 피해 파리에 정착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이라는 점에서는 로버트 카파와 같은 운명을 지녔다. 다만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로버트 카파처럼 참상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늘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산보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이 두 명의 사진가보다 덜 주목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로버트 카파와 카르티에 브레송은 그를 문제적 작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조용히 그러나 깊게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던 앙드레 케르테츠의 작품을 성곡미술관에서 소개하고 있다.
케르테츠가 파리에 도착하던 1925년은 최초의 소형 카메라인 라이카가 출현한 해이기도 하다. 케르테츠는 이 소형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임으로써 공간을 재구성하고 사물의 이면을 발견하고자 했다. 가벼운 카메라는 그의 눈을 대신해 파격적인 구도를 만들어 내고, 무심한 일상도 손쉽게 포착해 냈다. 뉴욕 모마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가 그를 소형 카메라의 미학을 탐색했던 사나이라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치 깨진 유리창을 통해본 것 같은 이 몽마르트 풍경은 소형 카메라가 아닌 유리 원판으로 얻어낸 사진이다.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그가 몇 년 후 파리로 돌아와 자신의 이 깨진 원판을 발견했다.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을 바꿔 인화를 하니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실제로 그의 다른 대표작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오히려 그래서 우연과 일탈을 두려워하지 않은 케르테츠의 면모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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