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캔버스에 오일, 80×65㎝, 1808~1812
의사가 편도선을 들여다보듯이 한 남자가 아이의 목구멍을 들여다보고 있다. 언뜻 그렇게 보이는 이 그림의 실상은 황당하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El Lazarillo de Tormes)’(1808~1812)다. 이 주제는 16세기에서 17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문학양식의 하나인 피카레스크 소설(picaresque novel)에서 유래했다. 이는 ‘피카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당대의 많은 무직자·불량배 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자전적 형식의 소설이다. 이집 저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자신은 물론 주인을 풍자 대상으로 삼는 이 소설은 악한 소설 혹은 건달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 속 화자 라사리요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기꾼의 하인이 되었다. 어느 날 주인의 저녁식사를 만들기 위해 소시지를 굽던 라사리요는 식탐을 이기지 못하고 먹어치운다. 대신 그는 맹인인 주인에게 빵 두 조각 사이에 순무를 끼워주지만 속임수는 금방 탄로나고 만다. 주인은 자신의 후각을 사용해 사라진 소시지의 행방을 추적하다가 소년의 입을 잡아당겨 벌린 다음 길고도 날카롭게 생긴 코를 입안에 밀어넣고 자신의 저녁식사 냄새를 맡는다. 그 때문에 소년은 속이 메스꺼워져 반쯤 소화되었던 소시지를 주인을 향해 게워낸다.
이 그림은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순간을 보여준다. 아이는 주인의 허벅지 사이에 꽉 끼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서 목구멍을 내주고 있다. 아이의 턱은 벌어져 있고, 맹인은 손가락을 안으로 집어넣어 소시지를 찾아 더듬거린다. 맹인의 탐욕은 붉고 긴 코의 모양새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이 무시무시하고 흥미로운 그림을 통해 인간 세상의 부조리와 어리석음을 고발한 고야야말로 어두운 유머를 기막히게 그려낼 줄 아는 풍자의 대가였다. 이 그림은 귀머거리가 된 만년의 그림이다. 몸이 약해져야 감각이 예민해진다. 세상을 보는 그의 섬뜩한 시선은 성찰의 힘을 갖게 한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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