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미, 정원이와 정원이의 핑크색 물건들, 2011
산부인과에서는 태아의 성감별이 불법임을 감안해 이런 흔한 편법을 사용한다. “분홍색으로 준비하셔야겠네요.” 간혹 ‘의식’이 있는 예비 부모들은 이 말을 들음과 동시에 파랑색 출산 준비물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겠다는 청개구리식 몸부림이다. 그러나 생애 첫 배냇저고리로 파랑색을 걸쳤던 여자아이라 하더라도 분홍색 물건을 고집하는 날은 기필코 오고야 만다. 이건 부모의 의식적인 노력조차도 색의 코드화 앞에서는 실패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아이가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일까. 혹은 원래 여자는 분홍을 좋아한다는 이분법 논리를 생물학적 특징으로 수긍하라는 뜻일까.
윤정미의 ‘핑크와 블루’ 연작은 이 아리송함에 대한 작업이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각자가 소유한 분홍색 혹은 파랑색 물건들을 방안 가득 늘어놓고서 성주처럼 도도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확신에 찬 태도는 마치 ‘분홍과 파랑이라는 감각과 소비의 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아이들이 늘어놓은 물건의 종류를 보면 이토록 다채로운 물건이 생산된다는 점에서 경이로울 정도다.
사진 속 아이들의 색에 대한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물질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역시 자본인가라는 고민마저 갖게 된다. 그럼에도 윤정미의 사진은 끝내 왜 아이들이 핑크를 집어 드는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사진 속 물건을 집착해서 바라보게 만든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색의 차이, 섬세한 취향의 차이는 언젠가 이 아이들이 분홍과 파랑의 세계를 통과해 저마다의 색의 세계로 진입할 가능성을 암시해 주기 때문이다. 윤정미의 작품이 단순하고 명료해 보이는 건 눈속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