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앵무새와 함께 있는 여인(빅토린 뫼랑), 186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네가 가장
사랑했던 모델 중 모델은 빅토린 뫼랑이었다. 서양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작품인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의 모델이 바로 그녀다. 마네는 1860년대 쿠튀르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모델을 서던 그녀를 만났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 그녀는 마네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마네는 어떤 여인에게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
여인이 주저하자 “싫으면 관두라지.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으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히 넘긴 빅토린 뫼랑이 헐렁한 분홍색 실내복을 입고 서 있다. 오른쪽 옆의 앵무새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사치와 퇴폐 혹은 성모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실 이 그림은 인물화인지 정물화인지 모호할 정도로 정물화에서 곧잘
보여주는 오감을 드러낸다. 보랏빛 바이올렛은 후각, 레몬은 미각, 헝겊 목걸이는 촉각, 외눈돋보기는 시각, 앵무새는 청각을
상징한다. 사실 이런 알레고리에는 훨씬 깊은 뜻이 있다.
이 그림은 ‘올랭피아’의 서 있는 버전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 남성 중심의 아카데미즘에 입각한 전형적인 누드들, 예컨대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누드 혹은 쿠르베의 레즈비언적 누드 혹은 동방 취미가 가득한 누드들에 대한 반기라고도 한다. 마네는
어떤 방식으로든 당대의 모든 속물 취미를 은근히 조롱하고 저항하는 개념적 미술을 선보였던 이단아였음이 틀림없다.
이
그림처럼 마네의 오감을 자극했을 것으로 보이는 빅토린 뫼랑이라는 여자가 궁금해진다. 사실 당대 모델이라는 비천한 계급인 그녀는
단순히 모델만 선 것이 아니다. 여성들을 위한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웠고, 줄리앙 아카데미의 이브닝 클래스를 다니기도 했다.
그녀는 당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대를 비웃을 줄 알았고, 결국 화가가 되었다. 혹 그녀는 카미유 클로델과
마찬가지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파괴적인 지성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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