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그는 직업은 화가였고 신분은 귀족이었으며, 사진은 취미였을 뿐이다. 일곱 살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나 69세에서야 사진가로 알려졌다. 다만 데뷔 장소가 남달랐다. 뉴욕 현대미술관. 그곳의 사진부장 존 사코우스키가 그의 사진에 반해 첫 전시를 기획한 뒤로, 누구도 사진가로서의 그를 흉내낼 수 없었다.
자크 앙리 라르티그. 19세기 말에 태어나 피카소와 장 콕토 등을 친구 삼아 20세기를 즐겼던 인물. 프랑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그가 유년 시절부터 일기처럼 찍은 사진에는 상류 사회의 일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그 모습들은 한결같이 유쾌하고 즐거운 사건사고들로 가득해 그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으며 심지어는 군인으로 참전했다는 사실마저도 잊게 만든다. KT&G 상상마당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사진을 선보인다.
사진으로만 보자면 라르티그의 가족과 친척, 연인, 친구들의 매일에는 노동이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여가 활동이 차지하는데, 일 삼아 놀던 사람들답게 얼리어답터로서의 실험에도 적극적이다. 예를 들면 1910년에 찍은 이 사진은 ‘피루’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형의 우스꽝스럽고도 진지한 도전을 보여준다. ‘ZYX24’라는 이름을 가진 이 탈것은 피루의 22번째 글라이더였다. 7년 전 라이트 형제가 성공한 최초의 동력 비행이 당시 얼마나 유행이었나를 짐작하게 하는 이날의 실험에서 비루는 최장 1분을 날았다고 라르티그는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상류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없이 그들만의 신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솔직하고 유머 넘치는 시선 덕분이다. 그는 빛과 구도에도 탁월해서 그가 연인을 찍은 어떤 장면들은 그 순간을 훔치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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