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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송수정의 사진 속으로

예카테리나

Bientot(Soon), from the series Ekaterina, 2012 ⓒ Romain Mader / ECAL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우크라이나. 이로 인해 섹스 관광에 대한 오명도 적지 않은 이 나라에는 예카테리나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는 오직 여성들만이 산다. 늘씬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며, 신부 수업까지 마친 이 여성들의 이름은 모두 예카테리나. 사진가 로멩 마데르는 이 이상한 도시에서 신붓감을 찾아 즐기고 방황하다 마침내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을 만난다. 젊은 남자의 욕망에 충실한 이 설정은 물론 가짜다. 그러나 허무맹랑하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다. 예카테리나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로멩 마데르는 진짜 사진가이자 작품 속 주인공이고, 그가 찍은 모든 사진 또한 우크라이나의 현실 세계에서 채집되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35세 미만의 젊은 사진가를 선발해 지원을 해 주는 네덜란드의 사진미술관 폼(Foam)이 올해는 가볍고 기발하게 사진 이야기를 꾸며낸 스위스의 이 젊은 사진가를 수상자로 꼽았다. 대다수가 연출 없이 찍은 사진이지만, 그가 설정해 놓은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처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 있는 혼란을 맛본다. 그 미궁 속에는 성과 결혼의 상품화,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그 틈새에 놓은 개인들의 관계 등 꽤 진지한 질문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예카테리나를 스위스 마테호른 산으로 초대해 청혼을 하고, 결혼에 이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작가의 시치미는 대단해서 이 결혼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짜였으면 좋겠고, 혹시 가짜라 해도 진짜처럼 거짓말을 계속 해줬으면 하는 야릇한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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