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나팔수가 앞장을 선다. 음악까지 등장시킨 것으로 봐서 꽤 그럴싸한 행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팔수 뒤로는 키 순으로 늘어선 체육복 차림의 빡빡머리뿐이다. 절도는 있지만 좀 어설퍼 보인다. 그나마 그 절도도 양복을 빼입은 채 학생을 인솔하는 행진 오른쪽의 선생님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의미심장한 행진의 정체는 도열 끝 피켓이 쥐고 있다. 바로 쥐 잡는 날. 쥐잡기 운동이 온 나라에서 펼쳐지던 1967년 풍경이다.
반공방첩대회며 전국체전, 국군의 날 등 걸핏하면 학생들이 봉처럼 행사 들러리를 서던 ‘관제동원’의 시대였지만, 특히 그 무렵 쥐잡기는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해서 쥐잡는 일은 학교 공부보다도 중요한 ‘과업’이었다. 당시 농림부가 추산한 쥐는 9000만마리로 한 가구당 평균 18마리가 살고 있었고, 이 쥐들이 축내는 식량만도 곡물 총생산량의 무려 8%에 달했다.
쥐 박멸을 향한 대국민 프로젝트는 1970년대에는 더 규모가 커져 1972년 쥐띠 해에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당시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던 숙제는 회충 검사를 위한 ‘똥 봉투’ 제출과 쥐를 잡은 증거물로 제출해야만 하는 ‘쥐꼬리’였다. 신문마다 경쟁처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죽은 쥐를 소개하고, 신문 하단에는 쥐약 광고가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했다. 자의든 타의든 쥐약을 먹고 숨을 거두는 사건·사고도 흔해서 ‘쥐약이나 먹고 죽어 버려’라는 욕설까지 유행을 타던 시절이었다.
부천시가 부천이라는 행정명을 쓴 지 100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에는 이처럼 꽤 흥미로운 사진들이 많이 등장한다. 복숭아밭에서 공업단지를 거쳐 아파트 신세계로 변해온 작은 도시의 변천사는 지난 100년 한국의 변화상을 정교한 샘플처럼 제공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한 도시의 변화 속도는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두려울 정도다. 이 무서운 속도에 밀려 아파트공화국 다음에 정녕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