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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진지함을 비웃다

프란츠 자비에 메세르슈미트, ‘개성 있는 얼굴’, 18세기

미술사는 웃는 얼굴을 기록하지 않았다. 웃음은 경박하고 천한 것이며, 영원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금서가 된 희극(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희극일 것이라는 가정)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싫어했는데, 웃음이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없애면 악마의 존재를 무시하게 되고, 그러면 신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렇게 금서에 묻힌 독 때문에 수도사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은 신앙이 공포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소가 아닌 깔깔 웃는 두상을 만든 작가가 있다. 그뿐 아니다. 하품하는 얼굴, 찡그린 얼굴, 아이처럼 울고 있는 얼굴, 엄청 화가 난 얼굴 등 온갖 우스꽝스러운 얼굴표정이 조각 작품으로 등장했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이 범상치 않은 조각을 만든 작가는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자비에 메세르슈미트(1736~1783)이다.

‘개성 있는 얼굴’로 불리는 두상 연작은 다양한 표정을 지을 때 근육이 일그러지는 것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 세심하게 포착해 만든 것이다. 그는 이런 표정을 연구하기 위해 마치 마임이스트처럼 거울 앞에서 스스로 몸을 꼬집거나 찌르면서 표정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했다. 총 69점에 달했지만 19세기 말에 분산, 행방이 묘연한 작품들이 많다.

빈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빈 궁정 소속으로 일하면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을 비롯해 엘리트들의 초상조작을 제작했다. 아카데미 부교수로 재임했으나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동료들에게 배척당해 교수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울분에 찬 그는 빈을 떠나 다른 도시에 칩거했다. 이 조각들은 한 세기 반이나 잊혀졌다가 20세기에야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별난 성격으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이단아 메세르슈미트의 이런 두상들은 당대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한 조롱과 비판은 아니었을까.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