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된 사진들

키스의 뒷면

영화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스틸컷. 영화사 진진 제공

 

파리 시청 앞 거리에서 젊은 남녀가 키스를 나눈다. 지나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절묘하게 포착된 순간은 파리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전 세계에 수십만 장의 포스터와 엽서로 팔려나간 ‘시청 앞의 키스’는 모델을 구해 연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을 산다.

 

최근 이 사진을 찍은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며 그 비난은 온당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물론 이 사진의 감동은 상당 부분 ‘실제 연인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연출됐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실망과 배신감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이 촬영된 때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떠올리면 복잡한 심사가 된다. 1950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이 완연한 시절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유태인 학살과 드레스덴 폭격 그리고 나치 부역자를 처단하기 위한 길거리에서의 조리돌림 등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확인시켜준다. 젊은 연인의 낭만적인 키스로 기억되기에는 석연치 않은 시절인 것이다. 그러니 이 사진에서 배신감을 느낄 부분은 ‘키스의 연출’이 아니라 키스로 가려진 현실이 아닐까?

 

“내가 볼 때 현실은 없다.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면만 보여줄 뿐.” 영화 속에서 두아노는 말한다. 연출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이 사진이 인기를 끄는 건, 두아노뿐만 아니라 우리도 사진에서 ‘좋아하는 면만’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는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얇지만 깊은  (0) 2017.09.08
짓궂은 운명  (0) 2017.09.01
마음의 준비  (0) 2017.08.21
85번의 절망  (0) 2017.08.11
119시45분  (0)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