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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파벨라

디오니시오 곤살레스, 파벨라 시리즈, 2004~2007


유토피아는 잊어라. 미래 도시는 방대한 슬럼이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봤다. 많은 것이 도시로 집중되는 가운데, 도시 인구의 절반은 슬럼 거주자일 것이라는 예측이 덧붙었다.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되면 슬럼 또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던 과거의 예언은 부의 불평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를 봤을 때, 안일한 믿음에 불과하다.

 

디오니시오 곤살레스는 10여년 전부터 대도시의 슬럼 지구를 살피며 도시 빈민들의 터전을 촬영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곳곳에 퍼져 있는 빈민촌 파벨라의 건축 구조는 시선을 끌었다. 계획이라고는 전혀 없는 불규칙적이고 불안한 오두막이 산자락부터 산등성이를 타고 퍼져나가 있다. 거주지이긴 하지만, 범죄와 마약의 온상이기도 한 이곳은 폭력과 살해가 공존하는 기피 장소였고, 지역 사람들 내면에는 증오와 절망이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대면한 작가는 작업을 통해 갈등의 중간 위치에 서보기로 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었다. 예술가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 역시 이들의 독립성과 자율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독립자인 그들은 의견을 제시할 뿐이지만, 그 의견이 경우에 따라서는 중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개개인의 취향과 삶의 모습에 따라 다른 형태로 번식한 파벨라의 유기적 구조를 물리적인 철거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고민해볼 수 없을지 들여다본 작가는 파벨라를 컴퓨터 합성으로 재건축하기로 한다. 그렇게 현실 이미지 위에 디지털로 조작한 가건물을 앉힌 이미지가 탄생했다. 이 가상의 이미지가 슬럼 지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해결을 위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갈등 사이에서 완충지가 되었다. 작품은 작가가 희망한 바로 그 정도의 존재였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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