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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평범함의 격조

사석원, 수탉, 2017, 한지에 수묵, 129×167㎝


사석원은 치바이스를 동양화의 ‘넘사벽’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동양화를 막 시작했을 때 그의 화집을 본 사석원은, 따뜻한 시선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생동감을 포착한 표현력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치바이스를 마음의 스승으로 모신 그 역시 살아있는 것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시, 서, 화, 각 모두를 아우른 치바이스는 일상의 소소한 대상,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주목했다. 당대 문인화가들은 대상으로 삼지 않던 ‘미물’이었다. 고전과 자연을 스승 삼아 그림을 그렸던 작가에게 대지 위의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 있었으니 다른 잣대를 내세우며 소재를 고를 일이 아니었다. 세상을 대하는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선인의 틀에서 벗어난 화면을 구상하기 위해 그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먹색을 제대로 내는 데만 40년이 걸린다고 하는 수묵화의 매력을 붓질에서 찾는 사석원은 치바이스의 수탉 그림에 주목했다. 치바이스가 그린 닭 그림에서는 잘 그리고자 하는 교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교를 떨쳐낸 그림이 주는 평화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물의 본질만을 묘사하면서, 내적 생명력과 유머를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내공은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무수히 묘사를 반복한 끝에 대상의 본질과 미의 질서를 굵고 단순명료한 필획으로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형상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형상을 꿰뚫고 있는 치바이스의 작업을 보며 사석원은 현대적인 추상미를 통해 수탉의 에너지를 표현해보고자 했다. 대상을 눈앞에 두고 그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며 마음에 새겨 놓은 모습을 화면 위로 끄집어낸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수탉의 몸짓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역동적인 붓질과, 그 안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눈동자에서 닭의 생명력을 대면한다. 대상을 향한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은 그렇게 세상 모든 평범한 것들이 품고 있는 생명 에너지의 찬란함을 펼쳐 보인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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