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마음을 잡고 하나에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스마트폰 덕분에 수많은 친구가 생겼을까? 도무지 하나에 마음을 모으기가 어렵다. 수많은 대체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무의식을 끌어당겨서 시간을 쏟게 하는 디지털 놀이판에서 노닌다.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뒤쫓는다. 그나마 곁에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이 이미 떠나버린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떠남조차 무겁지 않게 자유라고 선언했다.
송수남, 붓의 놀림, 2000
한국화의 거두 송수남(1938~2013)의 ‘붓의 놀림’(2000) 앞에 선다. 거대한 하나의 붓결마다 응축된 힘에 마음이 멎었다. 하나, 하나, 붓결을 천천히 본다. 결마다 흔들림 없이 곧게 내려오면서도 강압적이지 않고 부드럽다. 붓이 종이에 닿을 때, 먹물이 붓결과 종이결의 사이로 스미며 퍼져가는 기다림을 느낀다. 수도사와 같이 화려한 색도 감추고, 매혹적인 모습도 거둔다. 먹이 퍼져가는 것에만 온 마음을 다하는 시간으로 영원에 닿는다.
하나의 들숨, 하나의 날숨, 숨결마저 멎은 듯하다. 마음의 중심을 감춘다. 글씨와 그림에서 하나의 획마다 붓끝의 중심을 가운데에 놓고, 송곳으로 긋는 것처럼 마음을 집중한다. 마음은 하나하나마다 그 중심에 있지만, 밖으로 현란하게 드러내지도,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는다. 마음에 집중의 시간을 준다. 마음을 하나에 둔다. 하나가 많음의 근원이라는 가치에 마음을 적중시킨다. 마음을 하나에 집중시키려면,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 빈 듯한 마음은 넉넉한 품이 되어 근원이 되는 하나가 자유롭게 뛰놀게 한다. 마음을 하나에 집중할 때, 수많은 현상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마음에 주어지지 않은 것을 묻는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세 가지 질문을 한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두 번째 질문에 마음이 쓰인다. 지금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 깨달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라면서.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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