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얼이 담긴 틀이다. SNS에 수많은 셀카 사진들이 올라온다. 예쁜 얼굴사진을 올릴수록 무수한 ‘좋아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얼굴을 보는 것은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온라인이라는 가상현실조차 얼굴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초상화의 마력 같은 힘은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사람의 내면을 전달하고 그려서 비춰내는 데에서 나온다.
진감여, ‘이제현초상’, 원, 1319년, 국립중앙박물관
얼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본능이다. 얼굴 표정은 상대방과 관계맺기에 가장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외로워요’로 보이면 보호본능을, ‘즐거워요’로 보이면 웃음을, ‘화났어요’라고 보이면 두려움을 느낀다. 얼굴에서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전달받아서, 내 마음이 반응에 들어간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지 않고, 예쁜 얼굴에 집중하는 습성은 관계맺기의 대상을 고르는 본능적 행동이다. 성숙한 관계맺기는 본능적인 집중을 넘어선다. 초상화는 숨겨준 장치들로 그 사람의 마음가치를 배운다. 이제현(1287~1367)의 초상화를 본다. 그는 고려말의 신진 사대부 출신 관료이자 <역옹패설>을 쓴 문학가다. 외교관으로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서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고려의 독립적인 지위를 촉구했다. 외교관 활동 당시 원나라 진감여가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중국 화가의 그림으로 한국 국보로 지정된 특이한 작품이다.
이제현의 초상화를 보면서, 우리는 그의 얼굴에 집중하지 않고 어떤 마음가치를 배우려고 한다. 그림을 통한 성숙한 관계맺기의 시도다. 화가 진감여는 감상자를 위해 이제현의 초상화에 <주역>을 그려 넣었다. <주역>은 음양의 조합으로 다사다난한 사회생활에서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지혜서다. 이제현을 운명에 맡기면서도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균형의 지혜를 찾는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이제현은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스스로 말했다. “불행은 나 자신이 만든 것이니, 스스로 반성해 보면 어떨까. 못생긴 내 얼굴 그려두면 무엇할까만, 나의 후손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한 번 쳐다보고 세 번 생각하라. 불행이 있을까 경계하며,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노력하라. 구차한 행복을 바라지 마라. 불행을 피하게 되리라.”
선승혜 | 아시아인스티튜트 문화연구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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