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루에 오른 카약, 2015년 1월31일 ⓒ이우기
하얀 별처럼 반짝이는 눈발이 까만 허공에 박힌다. 촘촘한 백성좌를 향해 분홍빛 카약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비계 파이프로 얼기설기 만든 망루에 얽힌 카약은 제자리에서 꼼짝 못한다. 좌초된 카약 대신 노란 깃발들이 거센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NO! NAVAL BASE(해군기지 반대!)”
3년 전, 허공에서 제자리를 맴돌던 카약에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을 비롯한 5명이 몸을 실었다.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확정되고, 공사가 강행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엉성하고 위태로운 망루 꼭대기에 올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으며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날 아침, 해군은 100여 명의 용역을 투입해 망루를 철거하는 행정 대집행을 시작했다. 용역들은 강정마을 주민, 시민단체 회원 등을 강제로 끌어냈다. 부상자들이 속출했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 1000여 명은 뒤에서 구경만 했다. 국민의 편에 서야 할 군경이 오히려 국민을 되돌아선 모습이 SNS에 전파되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런가 하면, 연로한 강정 주민들은 뭍에서 온 많은 경찰을 바라보며 제주의 오래된 악몽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날 새벽, 폭풍전야의 어두운 긴장감 사이로 무심한 눈발이 또다시 흩날렸다. 아주 오래된 어제와 곧 밝아올 내일까지 이어지는 제주의 신음 또한 차가운 눈처럼 쌓여 녹을 줄 몰랐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