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시간을 응축하면 상은 단순해지고, 색은 깊어진다. 손성모의 바다 사진에는 선과 색으로만 이뤄진 가장 단순한 세계만이 존재한다. 대형 카메라로 한 시간 가까이 장노출을 주자 바다와 하늘은 각기 짙은 회색과 흰색으로 무화되었다. 미니멀리즘 회화처럼 보이는 사진은 육안으로 지각하지 못했을 뿐 하늘의 밝음과 땅의 어둠이 대자연의 이치임을 깨닫게 한다. 디자이너 하라 겐야의 말을 빌리면, 백(白)은 색채가 아니라 하얗다고 느끼는 감수성으로 존재한다. 그 감수성은 텅 빔, 고요함, 맑음 등의 의미를 포함한다. 모든 찬란한 빛들을 합쳐 놓으면 아무런 빛도 없는 백의 세계가 되기에 그것은 있음과 없음의 양면이기도 하다.
손성모, 감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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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한대로 넓고 텅 빈 백의 세계 아래에 놓임으로써 검정은 비로소 존재감을 발한다. 본래 푸르다 못해 짙고 어두운 빛인 현(玄)은 우주의 깊이를 상징한다. 마땅히 하늘의 영역에 있어야 할 이 어둠이 사진 속에서는 땅과 바다의 깊이를 대변한다. 땅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땅이며 우주의 어둠은 바다 밑 심연과 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감포 바닷가 앞에서 얻어낸 사진은 파도, 물안개, 바닷바람, 대기의 흔들거림을 아무런 내색도 없이 빨아들인 채 밝음과 어둠에 대한 감각을 무한대로 열어놓는다.
송수정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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