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기억된 사진들'에 해당되는 글 64건

  1. 2018.06.08 시선의 갑질
  2. 2018.06.01 분노의 거리
  3. 2018.05.25 러브 라이프
  4. 2018.05.21 세이프 컨덕트
  5. 2018.05.18 꼭꼭 숨어라
  6. 2018.05.11 장면의 단면
  7. 2018.05.04 새까맣게 태워도
  8. 2018.04.20 컵의 숫자만큼
  9. 2018.04.13 사이의 무게
  10. 2018.04.06 세상이 바뀔 때마다
  11. 2018.03.30 다시, 작은 세계
  12. 2018.03.23 로스트 앤드 파운드
  13. 2018.03.16 생애를 건 목소리
  14. 2018.03.09 그대로 제자리
  15. 2018.03.02 아득한 속도
  16. 2018.02.23 보통의 영웅들
  17. 2018.02.09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18. 2018.02.05 하얀 신음
  19. 2018.01.29 고양이
  20. 2018.01.22 영혼의 무게

이 사진은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된 선거 포스터의 원본이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를 찍은 이 사진은 패션 사진가 김현성이 촬영했다. 이 사진 위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문구를 더하고 배경을 녹색으로 바꿔 선거벽보가 완성됐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당당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는 호응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불편하다는 시선도 있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에 사용된 사진. ⓒ김현성

 

그중에서 박훈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격렬한 반응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아주 더러운 사진” “개시건방진” “찢어 버리고 싶은” 등의 표현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만 놓고 보면, 그런 격한 반응이 수긍될 정도로 도발적이지 않다. 상반신에 반측면 얼굴을 담은 전형적인 인물사진으로, 우리가 평소 자주 접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선거벽보 사진은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에게 호감과 신뢰를 얻기 위해 친근감과 자신감을 어필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이 비춰지는 포즈나 눈빛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진 또한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사진을 두고도 각자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반응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에 대고 공손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탐탁지 않다. 왜 사진마저 공손해야 하는가? 사진 속 인물이 어린 여성 후보이기 때문에? 또는 사진을 바라보는 자신이 중년 남성 변호사이기 때문에? 전자라면 다분히 여성혐오적인 시선, 후자라면 시선의 권력에 의한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보드 별곡  (0) 2018.06.22
잊힐 기억  (0) 2018.06.15
시선의 갑질  (0) 2018.06.08
분노의 거리  (0) 2018.06.01
러브 라이프  (0) 2018.05.25
세이프 컨덕트  (0) 2018.05.21
Posted by Kh-art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다. 어느 한국인이 프랑스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열심히 일했다. 누구보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스스로 야근까지 하면서 말이다. 한국에서 몸에 밴 습관 탓이리라. 이를 지켜보던 동료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는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얻어낸 우리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어.”

 

민주노조 인정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울산의 거리를 가득 메운 현대그룹 7개 계열사 노조원들. 1987·8·18 경향신문사

 

 

프랑스 동료의 말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날 ‘1일 8시간’ 노동 환경이 마련되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투쟁과 희생 덕분에 지금 당연하게 요구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실현된 것이다. 최근 최저임금법 개악이 매우 씁쓸한 이유는 그동안 치열한 투쟁으로 확보한 노동자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동자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파인텍 노조원들은 굴뚝 위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이며,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장 일가의 횡포에 맞서 촛불을 들고 있다. 또한 KTX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이 달린 재판이 정권을 위해 거래됐다는 의혹도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또 다른 한편에선 악화 중인 노동 환경을 목격하면서 묵직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울산에서 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가두시위를 벌인 그들처럼.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잊힐 기억  (0) 2018.06.15
시선의 갑질  (0) 2018.06.08
분노의 거리  (0) 2018.06.01
러브 라이프  (0) 2018.05.25
세이프 컨덕트  (0) 2018.05.21
꼭꼭 숨어라  (0) 2018.05.18
Posted by Kh-art

2018년 1월 옛 전남도청 앞에서 본 전일빌딩 ⓒ윤성희

 

감은 눈처럼 새까만 창문의 숫자를 세어본다. 아무리 세어봐도 창문에 불빛이 켜질 기미는 없다. 물 먹은 눈처럼 번진 간판의 흔적을 따라 그려본다. 아무리 그려봐도 글자를 읽을 수는 없다. 끝내 불빛이 켜지지 않는 창문은 씁쓸하다. 아무도 기다려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끝내 읽을 수 없는 흔적은 서글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 있는 건물은 아무 말이 없다. 깊은 밤처럼 점점 어둡게 번지는 쓸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제 몸을 뒤튼다.

 

사진 속의 전일빌딩은 모두 185개의 총탄 흔적을 몸에 지닌 채 광주 금남로에 서 있다. 이곳에서 3차례 조사를 마친 국과수는 총탄 흔적을 분석해 “헬기 사격이 유력하다”고 결론 냈다. 30여년 전 이 건물에서 벌어진 일을 상상할수록 씁쓸하다. 1980년 5월 신군부가 전일빌딩으로 피신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만행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아무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 비극을 증명하는 건물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헐리고 주차타워가 될 뻔했던 사연은 서글프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영영 어두워지는 씁쓸함과 서글픔 사이에서 알파벳 글자 ‘LOVE LiFE’가 기묘하게 반짝거린다. 이곳에서 씁쓸하고 서글프게 죽어간 삶을 기억하라는 듯이.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선의 갑질  (0) 2018.06.08
분노의 거리  (0) 2018.06.01
러브 라이프  (0) 2018.05.25
세이프 컨덕트  (0) 2018.05.21
꼭꼭 숨어라  (0) 2018.05.18
장면의 단면  (0) 2018.05.11
Posted by Kh-art

공항 검색대 앞에 서면 분주하다. 일단 검색대 트레이 안에 가방을 놓는다. 이때 노트북과 액체류는 따로 꺼내야 한다. 재킷을 벗고, 허리띠를 빼고, 시계를 풀고, 때로는 신발을 벗는다. 몸에 지닌 어지간한 쇠붙이는 모두 꺼내 놓은 뒤 검색대 게이트에 들어선다. 양팔을 위로 들고 서 있으면, 기계가 나를 한 바퀴 스캔한다. 그 사이 검색대 위 나의 짐도 스캔 당한다. 어디론가 누군가를 향해 위협을 가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비로소 나는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에드 앗킨스, 세이프 컨덕트, 2016, 3채널 비디오 ⓒ 에드 앗킨스

 

틀에 박힌 시간, 소셜 미디어에 의해 결정되는 자아의 모습을 탐색하면서 기술이 매개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슈를 다루어 온 에드 앗킨스는 공항의 검색대 앞에서 안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절차가 백인 서양 남성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끔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전을 위한 검열에 대한 합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나’는 어디까지 위험하고, 어디부터 안전한 것인가.

 

그는 마치 공항 검색대 앞 풍경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세 대의 모니터를 천장에 매달았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은 공항의 안전 프로토콜을 안내하는 애니메이션처럼 보이지만, 애니메이션 속 인물은 재킷을 벗는 대신 얼굴을 반복적으로 벗겨내고, 코를 떼어내고, 간을 꺼내고, 피를 뽑고, 뇌를 꺼낸다. 안전 검색대와 장기은행 사이 어디인 것만 같다.

 

그는 공항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처럼, 매번 단지 하나의 모티브만을 지독하게 반복하는 볼레로의 선율을 흥얼거리며 위험하지 않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나’를 포기하는 중이다. ‘보안’의 이름으로.

 

<김지연 전시기획자>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의 거리  (0) 2018.06.01
러브 라이프  (0) 2018.05.25
세이프 컨덕트  (0) 2018.05.21
꼭꼭 숨어라  (0) 2018.05.18
장면의 단면  (0) 2018.05.11
새까맣게 태워도  (0) 2018.05.04
Posted by Kh-art

광주거리 골목에 잠복하고 있는 계엄군. 1980년 5월27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만약 사진 속에서 누군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림자 밑에 매복한 군인들이 달려나오는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상상은 곧 소리로 바뀐다. 달려가는 군인의 거친 군화 소리, 휙 개머리판을 내리치는 소리, 퍽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으악 차마 끝까지 못 내지른 비명, 푹 맥없이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 입이 없는 사진에서 이렇게 처참한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 이미 창백한 흑백사진은 흥건한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1980년 5월27일 광주 충장로에서 찍힌 사진이다. 손글씨처럼 투박한 간판을 살펴보면, 오락실, 당구장, 고전 음악실, 생맥줏집 등 이곳은 젊은이들의 거리로 짐작된다. 저 멀리 삼복서점 간판까지 보일 정도로 맑고 화창한 오월이지만, 거리에는 군인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차마저 한 대도 없고, 상점들은 모두 셔터문을 굳게 내렸다. 이날 새벽 다섯 시 십 분, 진압 작전 종료를 선언한 국가는 시민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엄포를 내렸다. 무려 2만5000의 군인을 투입하고 난 뒤고, 시민들은 국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목격한 이후였다. 그 결과, 이 거리를 채워야 할 젊은이들은, 시민들은 죽거나 집에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국가가 국민을 죽였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된 80년 광주. 그날이 담긴 사진에서 숨어 있는 군인을 세다가, 이 텅 빈 거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게 되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브 라이프  (0) 2018.05.25
세이프 컨덕트  (0) 2018.05.21
꼭꼭 숨어라  (0) 2018.05.18
장면의 단면  (0) 2018.05.11
새까맣게 태워도  (0) 2018.05.04
컵의 숫자만큼  (0) 2018.04.20
Posted by Kh-art

연두색 철 펜스 위에 남과 북 두 정상의 얼굴이 나란히 걸려 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한 프레임 안에 함께하는 모습 자체가 비현실적이거나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 2018년 5월5일 ⓒ주용성

 

실제로 만나기 전부터, 각 언론사에서는 역사적인 만남을 예견하는 자료사진이 보도됐다. 판문점을 배경으로 두 정상이 함께 있는 이미지는 생경하게 다가왔다.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순간을 합성해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그런 만남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4월27일,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만났던 꿈같은 하루는 현실로 생중계되었다. 모든 국민들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악수하고 농담을 나누며, 가볍게 군사분계선을 뛰어넘고 함께 종전을 선언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지난 5월5일,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촬영된 이 사진은 그날 이후 달라진 분단 풍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신도시 오피스텔 광고 현수막에 두 정상의 미소 띤 얼굴이 등장할 만큼 화해와 평화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나 사진이 찍힌 날, 같은 장소에서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김정은의 위선 평화공세’라고 주장하며 대북전단을 살포하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됐다. 이처럼 두 정상의 얼굴과 종전선언 그리고 부동산 광고와 대북전단이 함께하는 장면은 분단 현실의 생생한 단면일 것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이프 컨덕트  (0) 2018.05.21
꼭꼭 숨어라  (0) 2018.05.18
장면의 단면  (0) 2018.05.11
새까맣게 태워도  (0) 2018.05.04
컵의 숫자만큼  (0) 2018.04.20
사이의 무게  (0) 2018.04.13
Posted by Kh-art

세 명의 청년이 오른팔을 들고 구호를 외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없는 사진은 대신 벽에 적힌 구호를 보여준다. “노조인정”, 글자 아래에는 창업주로부터 80년간 ‘무노조경영’ 방침을 이어온 회사의 이름이 보인다. ‘삼성’, 한 글자는 이미 새까맣게 타버렸다.

 

1989년 1월19일 서울 삼성본관에서 노조인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 소속 노동자 5명과 고려대 등 8개교 대학생 20명은 낮 12시부터 삼성본관 3층 베란다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들을 해산시키려고 경찰이 접근하자 삼성중공업노조 홍보부장 변성준 등 5명은 극약을 먹거나 몸에 시너를 뿌리고 극렬하게 반항하다 경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삼성본관을 점거하고 노조인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1989·1·19. 경향신문사

 

 

이제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조금 더 나아졌을 테니 극약을 먹거나 시너를 뿌리는 등의 극단적인 선택은 불필요할 것만 같다. 그러나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의 최종범은 노조활동을 하다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었고, 노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33세, 첫돌을 앞둔 딸이 있었다.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염호석은 노조 설립 후 사측의 압박을 받다가 최종범을 뒤따랐다. 그의 죽음은 ‘마스터플랜’ ‘그린화 작업’ 등으로 불린, 이른바 노조와해 공작의 실적으로 포함됐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계일류니 또 하나의 가족이니, 기만적인 구호는 새까맣게 태워도 시원찮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꼭꼭 숨어라  (0) 2018.05.18
장면의 단면  (0) 2018.05.11
새까맣게 태워도  (0) 2018.05.04
컵의 숫자만큼  (0) 2018.04.20
사이의 무게  (0) 2018.04.13
세상이 바뀔 때마다  (0) 2018.04.06
Posted by Kh-art

이 사진은 매우 무섭고 섬뜩하다. 테이블에 놓인 수저통과 양념통, 주전자, 양옆의 컵까지 모두 무섭다. 뒤에 걸린 태극기와 양옆에 쓰인 ‘자조’, ‘자립’이라는 단어 또한 섬뜩하다. 도대체 이것이 왜 무섭고, 섬뜩하단 말인가? 사진 속의 이곳은 형제복지원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대규모 식당 전경, 1981년. 경향신문사 자료사진

 

형제복지원은 1960년대 문을 열어 1987년까지 3164명을 수용했던 전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던 이곳에서 513명이 사망했다.

 

사진 속에 가지런한 도구들은 513명에서 3164명까지 악몽을 겪었을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켜준다. 단지 숫자가 아니라 식당에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물을 마셨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저 많은 컵만큼, 저 커다란 식당을 채웠을 만큼 누군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각성시켜준다.

 

그들은 이유 없이 끌려와 갇혔고, 이유도 모른 채 굶주려 죽거나 맞아 죽었다.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원에 대학병원의 해부학 실습용으로도 팔려갔다.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513명이 죽었지만, 정부 당국의 수용 정책과 시설 운영자들의 경제적 타산이 일치되면서 무려 12년 동안 진실은 은폐되었다. 이처럼 끔찍한 인권 유린이 벌어졌지만, 1989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게 내려진 최종 선고는 고작 징역 2년6월. 관계 당국의 직무유기, 부정과 비리행위 없이도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사진 속 태극기가 무섭고 섬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면의 단면  (0) 2018.05.11
새까맣게 태워도  (0) 2018.05.04
컵의 숫자만큼  (0) 2018.04.20
사이의 무게  (0) 2018.04.13
세상이 바뀔 때마다  (0) 2018.04.06
다시, 작은 세계  (0) 2018.03.30
Posted by Kh-art

light volume ⓒ이민지


물기 먹은 바닥에서 팔과 다리가 돌과 물병에 붙잡힌 비닐 우의는 사람의 허물 같다. 바람이 불자 투명한 허물은 진짜 사람이 숨을 내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신기하게도 그 어떤 무생물도 숨을 쉬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숨을 멈추면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숨이 있고 없고, 이 얄팍한 차이로 삶과 죽음의 아득한 간격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판가름된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하다. 사진에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지만 숨을 쉬는 몸뚱이는 역설적으로 살아 있었지만 숨을 멈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민지의 ‘라이트 볼륨’ 연작에서 작가의 시선은 숨이 있고 없고, 그 사이와 차이에 머문다. 그 눈길은 마치 ‘혹시 숨을 쉬지 않는 걸까’ 싶어 코 주위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는 마음과 닮았다. 문득 너무나 가까워진 죽음 앞에서 극도의 긴장감과 조심스러움이 교차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눈길과 마음으로 포착한 할머니의 임종 전후의 풍경과 사물은 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처럼 막막한 불안감과 투명한 체념이 묻어 있다. 막막함과 투명함 사이, 숨이 있고 없고의 차이, 그 간격의 무게는 과연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까맣게 태워도  (0) 2018.05.04
컵의 숫자만큼  (0) 2018.04.20
사이의 무게  (0) 2018.04.13
세상이 바뀔 때마다  (0) 2018.04.06
다시, 작은 세계  (0) 2018.03.30
로스트 앤드 파운드  (0) 2018.03.23
Posted by Kh-art

모든 사람들이 오른팔을 들어 팔뚝질을 한다. 사진에서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바라보면 함성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불끈 쥔 주먹과 구호가 향하는 곳은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적힌 커다란 걸개그림이다.   

 

 

큰 규모의 시위나 집회, 장례 행렬마다 대형 걸개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인 연유를 시각적으로 요약하는 걸개그림의 모티프는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사진에서 비롯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그랬고, 1989년 전국노동자대회의 ‘노동해방도’도 그랬다.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어머니 영정을 끌어안은 상주 전태일의 모습이 담긴 걸개그림이 앞장섰다. 단순히 현장을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진이 투쟁의 현장에서 구심점이 되는 걸개그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바다에서 떠오른 젊은이의 사진 한 장이 커다란 투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이한열 열사 추모제, 1989년 6월9일 ⓒ박용수

 

그러나,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꾼다’고 쉽게 흥분하지는 말자. 엄밀히 말하면 세상을 바꾸는 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사진에 반응한 사람들의 힘이다. 사진 한 장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으는 촉매 역할을 하지만, 그건 사진 마음대로 또는 사진가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함께 반응하고 움직여야 생기는 결과인 셈이다. 세상이 바뀌는 고비마다 사진이 함께 깃들어 우리의 기억과 망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컵의 숫자만큼  (0) 2018.04.20
사이의 무게  (0) 2018.04.13
세상이 바뀔 때마다  (0) 2018.04.06
다시, 작은 세계  (0) 2018.03.30
로스트 앤드 파운드  (0) 2018.03.23
생애를 건 목소리  (0) 2018.03.16
Posted by Kh-art

섬광기억 #여름방학2, 2017 ⓒ권도연 (제공_갤러리 룩스)


간신히 책의 몰골로 남은 종이 뭉치들이 재처럼 바스라질 것 같다. 영안실의 시신처럼 표본실의 표본처럼 창백한 얼굴을 카메라 앞에 드러낸다. 플래시의 강한 섬광과 함께 방부된 종이 얼굴에서 책의 영정을 떠올린다.

 

개인전 <섬광기억>(갤러리 룩스, ~4월22일)을 열고 있는 권도연 작가가 연출한 장면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작가의 아버지는 헌책방에서 사온 책들로 집 지하실에 작은 도서관을 꾸며줬다. 작가는 이곳을 자기만의 놀이터로 삼아 내밀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홍수로 지하실이 침수되는 걸 목격했다. 물이 차오르고 빠져나가는 과정 속에서 뭉개지고 찢어지고 분해된 것은 단지 책만이 아니었다. 현실과 독립된 채 완벽한 문장들로 둘러싸인 작은 세계가 그의 눈앞에서 붕괴된 것이다.

 

작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성장한 뒤에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 기억(이미지)을 사진으로 불러온다. 도서관에서 기증받은 헌책에서 낱장을 분리해 나무선반 위에 배치하고, 물리적·화학적 처리를 거쳐 기억 속 이미지에 더 다가간다. 어제 속절없이 눈으로 지켜봐야 했던 장면을 이제 손으로 복원하는 과정은 스스로를 다시 자기만의 작은 세계에 인도하는 일일 것이다.

 

이 이미지는 과거의 기억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보다 현실에서 사라진 장면의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빛난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이의 무게  (0) 2018.04.13
세상이 바뀔 때마다  (0) 2018.04.06
다시, 작은 세계  (0) 2018.03.30
로스트 앤드 파운드  (0) 2018.03.23
생애를 건 목소리  (0) 2018.03.16
그대로 제자리  (0) 2018.03.09
Posted by Kh-art

로스트 앤드 파운드 프로젝트


표면이 지워지고 부식된 사진 속에 두 사람이 있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얼굴에는 코와 입이 지워졌고 눈만 간신히 보인다. 반대로, 다른 이는 눈 주위가 지워졌고 간신히 입만 보인다. 둘은 연인 사이일까, 아니면 부녀일까?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다정한 한때가 담긴 사진은 그들에겐 분명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발견된 사진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재해 현장에서 사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비록 망가진 사진이지만, 누군가의 추억이기에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사진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로스트 앤드 파운드(Lost and Found)’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수집된 사진들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재촬영해 색인파일 시스템으로 만들어 검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진의 주인을 찾아주는 게 프로젝트의 요지였고, 무려 1만9200장의 사진이 주인을 되찾았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 집과 도로 등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쌓은 시간과 기억들도 함께 부서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게 무너진 가운데 사진을 되찾는 일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은 마법처럼 옛 기억 속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그 모든 것이 떠내려가도, 붙잡아야 할 소중한 추억이 사진 속에 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이 바뀔 때마다  (0) 2018.04.06
다시, 작은 세계  (0) 2018.03.30
로스트 앤드 파운드  (0) 2018.03.23
생애를 건 목소리  (0) 2018.03.16
그대로 제자리  (0) 2018.03.09
아득한 속도  (0) 2018.03.02
Posted by Kh-art

성고문 사건이 일어난 조사실 책상, 1986년, 경향신문사


책상 하나로도 꽉 찰 만큼 좁은 사무실, 창문에는 철창이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다. 조금 삭막해 보이긴 해도 흔한 사무실의 모습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지옥 같은 곳이기도 하다.

 

1986년 6월6일 새벽, 당시 대학생이었던 권인숙은 부천경찰서 조사실에서 성적으로 유린당했다. 부천시 지역의 노동운동에 가담해 ‘허명숙’이란 가명으로 위장취업했던 그녀는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혐의로 연행됐다. 그리고 사진 속 조사실에서 수갑에 묶인 채 문귀동 형사에게 매우 악질적인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이른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녀는 정신을 차려 이 사실을 폭로했다. 문귀동을 강제 추행 혐의로 고소하고 검찰에 진상규명도 요구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어렵사리 용기를 낸 여성의 목소리가 우리 주위를 맴돈다.

 

 “나는 생애를 걸고 지구를 향해서 정당성을 주장한다.”

권인숙의 최후진술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목소리를 살뜰히 챙겨야 할 때다. 그러나 30년 전 검찰은 공식발표에서 “운동권이 성을 혁명의 도구화하고 있다”고 비난했고, 지금의 미투 운동을 두고는 꽃뱀을 운운하는 이도 있다. 절박한 구조신호가 담긴 이 목소리에도 응답하지 못하는 세상이란 얼마나 엉망인 것인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작은 세계  (0) 2018.03.30
로스트 앤드 파운드  (0) 2018.03.23
생애를 건 목소리  (0) 2018.03.16
그대로 제자리  (0) 2018.03.09
아득한 속도  (0) 2018.03.02
보통의 영웅들  (0) 2018.02.23
Posted by Kh-art

꺾인 풍경, 오키나와, 2016 ⓒ허란

 

눈동자에도 기억이 있는 걸까, 멀리 흐린 바다, 가까이 교복 입은 학생들. 바다와 교복만 눈에 스쳐도 왜 팽목항, 세월호가 보이는 걸까? 동공에서 호출된 기억은 일본 오키나와 바다를, 일본 학생들을 진도 앞바다로, 단원고 아이들로 둔갑시키고 만다. 망막에 각인된 기울어진 배는 더 이상 바다를 바다로 볼 수 없게 한다. 언제쯤 잃어버린 바다를, 침몰한 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전시 중인 허란의 사진전 <꺾인 풍경>(류가헌·3월11일까지)은 제주 강정에서 밀양, 팽목항까지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던 눈동자의 기억을 따라간다.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 딴청 부리며 예쁜 그림을 그리는 아이처럼, 작가는 아픈 풍경들 앞에서 딴 곳을 바라본다. 갈등이 첨예한 현장 속에서 찍힌 손톱 모양 초승달, 망아지 한 마리, 초록 나무 한 그루는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안온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현실 회피적인 시선이라 여기거나 반대로 내면이 투영된 자기만의 시선이라 치켜세우는 일은 조급하며 둔탁하다. 고개를 돌리는 건, 회피나 투영을 떠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사건의 중심부를 직시하며 오히려 현장의 어떤 치열함에 도취되거나 마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눈의 의지가 현실 회피가 될지 자기 투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다만, 확실한 건 고개를 돌려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대로이고, 풍경은 제자리일 뿐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스트 앤드 파운드  (0) 2018.03.23
생애를 건 목소리  (0) 2018.03.16
그대로 제자리  (0) 2018.03.09
아득한 속도  (0) 2018.03.02
보통의 영웅들  (0) 2018.02.23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0) 2018.02.09
Posted by Kh-art

어둠 위에 불빛과 불빛이 서로 스치며 겹쳐진다. 오늘의 풍경 위에 어제의 풍경이 투사된다. 도로 위에서 서로 포개진 어둠과 불빛 그리고 풍경은 유령 이미지처럼 차원이 다른 시공간을 부유하면서 반짝거린다. 모든 존재들이 사라지기 직전에 발산하는 투명한 빛처럼.

 

조준용, 1996 동대문운동장 Ⅱ, 2016 갤러리룩스 제공

 

조준용의 사진연작 ‘4.9mb Seoulscape’은 바라보는 이들의 눈동자에 아득한 기분을 불어넣는다. 그 아득함은 투명한 불빛과 반투명한 이미지들이 중첩된 시각성에서, 그리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대문운동장의 희미한 그림자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등 서울의 9개 순환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도로 한가운데에 사라진 서울의 풍경들을 빔프로젝터로 투사한 뒤 촬영했다. 어두운 허공에 쏘아올린 이미지는 1995년부터 서울시가 도시경관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구축한 ‘서울연구데이터 서비스’에서 찾았다. 이 사이트에 저장된 2만5000장의 사진은 모두 4.9mb 크기 이내로만 전송할 수 있다. 빨리 보내고 빨리 받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4.9mb의 사진 용량에 삼풍백화점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동대문운동장에 얽힌 많은 추억을 충분히 저장(기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무엇인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속도보다 우리의 기억과 망각이 더 빠른 것은 아닐까. 압축성장의 눈부신 속도에 동기화된 우리의 기억은 불과 몇 년 전의 사진 앞에서 언제나 아득한 기분에 빠져들고 만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애를 건 목소리  (0) 2018.03.16
그대로 제자리  (0) 2018.03.09
아득한 속도  (0) 2018.03.02
보통의 영웅들  (0) 2018.02.23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0) 2018.02.09
하얀 신음  (0) 2018.02.05
Posted by Kh-art

A_두훈(BLUE), 2017 ⓒ이승주

 

짧은 머리에 양복 차림의 남자가 보인다. 뒤에는 고층빌딩과 버스 정류장, 바닥에는 보도블록이 보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보이는 건 콘크리트 교각과 강바닥의 크고 작은 돌뿐이다. 만약 회사들이 즐비한 강남의 테헤란로에서 그를 마주쳤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테헤란로에서 순간이동한 것처럼 한강에 뚝 떨어진 모습이 자꾸 눈길을 멈춰 세운다.

 

사진가 이승주는 오랜 친구인 ‘두훈’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두훈의 직장과 멀지 않은 한강변이었다. 사진가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옷이나 소품을 준비하라고 주문했고, 모델은 파란색 넥타이와 짙은 남색 양복을 택했다. 이런 식으로 주변 지인들을 집이나 회사 근처 등에서 촬영한 사진연작 ‘A’에는 결과적으로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공간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블루, 레드, 옐로, 카메라 앞에서라도 히어로물의 주인공처럼 자기 고유의 색으로 변신하면 좋으련만, 스스로 선택한 파란 넥타이처럼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현실 속에서 이미 익명의 존재들 ‘A’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사진가는 친구들을 불러 그들의 독사진을, 전신상을 카메라에 당당하게 새긴다. 마치 변신을 앞둔 히어로의 모습처럼. 우뚝 선 두 다리, 불끈 쥔 두 주먹, 빳빳하게 쳐다보는 두 눈동자, 두훈은 친구의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그들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존재를 힘주어 바라본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로 제자리  (0) 2018.03.09
아득한 속도  (0) 2018.03.02
보통의 영웅들  (0) 2018.02.23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0) 2018.02.09
하얀 신음  (0) 2018.02.05
고양이  (0) 2018.01.29
Posted by Kh-art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수치심 때문에 죽는다.” 영화 &lt;디엣지&gt;의 대사다. ‘내가 왜 길을 잃은 거지? 뭘 잘못한 거지?’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지면 무기력해진다. 살기 위해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수치심 때문에 죽는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똥물을 맞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1978년 2월21일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TV에서 8년간 자책감에 시달렸다는 이를 보았다. ‘수치심 때문에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8년의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경직된 목소리는 40년 전 동일방직 노동자가 수치심을 견디며 부르쥔 주먹과 닮아 보였다.

 

1978년 2월21일, 대의원 회의를 앞두고 회사 측에 매수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조합원들에게 달려들어 똥물을 뿌렸다. 이른바 ‘동일방직 똥물사건’, 남성 중심의 어용노조 대신 여성 중심의 민주적 노조로 탈바꿈하자 회사와 정부가 탄압했던 것이다.

 

“그래도 똥물을 먹고 살 순 없다.” 그럼에도 계속 저항했던 목소리는 절박했다.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8년 전의 성추행 피해를 고백한 목소리는 단단했다. 수치심 때문에 죽는 인간은, 다시 또 수치심을 겪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 세상이 바뀌는 순간이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득한 속도  (0) 2018.03.02
보통의 영웅들  (0) 2018.02.23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0) 2018.02.09
하얀 신음  (0) 2018.02.05
고양이  (0) 2018.01.29
영혼의 무게  (0) 2018.01.22
Posted by Kh-art

망루에 오른 카약, 2015년 1월31일 ⓒ이우기


하얀 별처럼 반짝이는 눈발이 까만 허공에 박힌다. 촘촘한 백성좌를 향해 분홍빛 카약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비계 파이프로 얼기설기 만든 망루에 얽힌 카약은 제자리에서 꼼짝 못한다. 좌초된 카약 대신 노란 깃발들이 거센 바람에 제 몸을 맡기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NO! NAVAL BASE(해군기지 반대!)”

 

3년 전, 허공에서 제자리를 맴돌던 카약에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을 비롯한 5명이 몸을 실었다.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확정되고, 공사가 강행되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엉성하고 위태로운 망루 꼭대기에 올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으며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날 아침, 해군은 100여 명의 용역을 투입해 망루를 철거하는 행정 대집행을 시작했다. 용역들은 강정마을 주민, 시민단체 회원 등을 강제로 끌어냈다. 부상자들이 속출했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 1000여 명은 뒤에서 구경만 했다. 국민의 편에 서야 할 군경이 오히려 국민을 되돌아선 모습이 SNS에 전파되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그런가 하면, 연로한 강정 주민들은 뭍에서 온 많은 경찰을 바라보며 제주의 오래된 악몽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날 새벽, 폭풍전야의 어두운 긴장감 사이로 무심한 눈발이 또다시 흩날렸다. 아주 오래된 어제와 곧 밝아올 내일까지 이어지는 제주의 신음 또한 차가운 눈처럼 쌓여 녹을 줄 몰랐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통의 영웅들  (0) 2018.02.23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0) 2018.02.09
하얀 신음  (0) 2018.02.05
고양이  (0) 2018.01.29
영혼의 무게  (0) 2018.01.22
들리지 않는 눈물  (0) 2018.01.12
Posted by Kh-art

기억된 사진들

종이에 연필 (20x20cm)


요즘 반려 동물들을 많이 키웁니다. 그중에 애교 많고, 대소변 잘 가리고, 공간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고양이가 가장 인기가 많은 듯합니다. 온라인상에는 고양이 이미지들이 가득하고 사람들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들이 달립니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에서는 길 고양이들이 힘겹게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어젯밤 아직 엔진 열기가 남아 있는 차 밑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보았습니다. 현실에선 사람이나 동물이나 여전히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르쥔 주먹과 목소리  (0) 2018.02.09
하얀 신음  (0) 2018.02.05
고양이  (0) 2018.01.29
영혼의 무게  (0) 2018.01.22
들리지 않는 눈물  (0) 2018.01.12
엄마는 24시간  (0) 2018.01.05
Posted by Kh-art

서울 용산 4구역 남일당 빌딩 망루, 2010년 ⓒ노순택

 

21그램. 영혼의 무게로 불린다. 임종 직전과 직후에 그만큼의 몸무게가 차이나는 탓이다. 서울 용산 4구역 남일당의 부서진 망루 주변에 하얀 연기가 나타난 노순택의 사진을 보며 떠올린 것은 영혼의 무게였다. 쪼그라든 망루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1그램은 5센트 5개의 무게,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초코바 하나의 무게와 같다. 그렇다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 그들의 영혼은 5센트 30개, 초코바 6개의 무게와 같을까.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들이 남일당 건물을 점거한 채 경찰과 대치했다. 진압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경악스러운 대참사였지만, 누군가 쫓겨나는 장면은 그 어디선가 늘 되풀이되는 일이기도 했다. 2009년의 용산참사는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을 다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속의 한 대목과 겹쳐진다. 1980년대 서울 올림픽이 예정되면서 강제 이주되는 철거민 세입자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의 한 장면과 닮았다. 그제 평창 올림픽 가는 길목의 낙후지역이 부끄럽다며 가림막을 하자는 신문 기사를 보며, 70년대부터 오늘까지 누군가의 삶을 가리거나 철거하는 사회에서 영혼의 무게는 과연 얼마인지 의문이 들었다. 초코바 1개보다도 가볍게 다뤄지는 건 아닌가.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기억된 사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얀 신음  (0) 2018.02.05
고양이  (0) 2018.01.29
영혼의 무게  (0) 2018.01.22
들리지 않는 눈물  (0) 2018.01.12
엄마는 24시간  (0) 2018.01.05
깊은 구멍  (0) 2017.12.29
Posted by K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