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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삼거리 왼쪽 길모퉁이에 낯선 한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없었던 건물인데 지난해 9월 ‘서울돈화문국악당’이라는 국악 전문 공연장이 한옥의 모습으로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2011년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의 안이다.

 

 

출입구를 들어서면 잔디로 덮인 아담한 크기의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잔디마당을 단층짜리 한옥이 빙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행랑채 형식으로 잔디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한옥에는 카페가 자리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선사한다. 잔디마당에서 야외공연이 열리면 마당 쪽의 접이문이 좌우로 펼쳐져 카페 공간은 멋진 객석으로 변신한다. 140석 규모의 국악 전문 공연장은 이 잔디마당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어느 자리에서도 편안히 무대를 관조할 수 있도록 객석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객석 내부는 한옥 벽체와 한옥 여닫이창으로 인테리어를 하여 지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한옥의 정감이 공연장 내부로 이어진다. 공연장이라는 대형 공간을 지하화함에 따라 지상에 위치한 건물들은 크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건물의 모습은 잔디마당과 더불어 소박한 우리 전통 건축의 맛이 배어 나온다.

 

과거 돈화문 앞 거리는 조선성악회와 국악사양성소를 비롯한 많은 국악 명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현재도 국악학원과 한복집, 국악기점들이 다수 있어 이 지역에 대한 과거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서울시에서는 2014년 남산과 북촌, 돈화문로를 연결하는 국악벨트를 추진하게 된다. 특히 돈화문에서 종로3가를 연결하는 도로를 ‘국악로’로 지정하여 전통문화의 거리를 조성한단다. 그 첫 사업으로 창덕궁 앞에 있던 주유소를 매입하여 이 부지 위에 지금의 서울돈화문국악당을 마련한 것이다. 그 주위로 민요박물관과 국악박물관의 건립도 추진된다 하니 앞으로 돈화문 앞 국악로가 우리의 전통미를 만끽할 수 있는 멋진 문화의 거리로 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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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에서 다시 홍은사거리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상명대 앞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도로 아래 계곡 쪽에서 불쑥 솟아오른 한옥 지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으로 내려가 차를 대고 홍제천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예전에는 멋진 계곡이었을 이 홍제천 위를 가로지르는 5개의 아치로 구성된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다리와 곧바로 연결된 우진각 지붕을 한 성문이 앞서 궁금해했던 바로 그 한옥 지붕의 건물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해 세워졌던 성문인 홍지문(弘智門)이다. 성문 옆으로 계곡이 맞닿아 있으니 다리 역할을 하는 성벽이 필요했으리라.

 

다리 아래는 5개의 아치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렇게 5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라 하여 오간수문(五間水門)으로 불린다. 다리 위에는 성벽이었음을 알려주는 성가퀴(성벽 위에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낮게 덧쌓은 담)가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성벽은 다리 건너 우측 상명대학교 경사지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이 성벽이 탕춘대성(蕩春臺城)이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외성인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산성이다. 한양도성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자하문)에서 시작하여 북한산 서남쪽 비봉까지 연결되는 약 5㎞의 구간이다.

 

탕춘대성의 명칭은 세검정에서 동쪽 100여m 떨어진 산봉우리(현재 세검정초등학교)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었는데, 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결국 홍지문은 이 탕춘대성을 통과하는 문으로 한양의 북쪽에 있다 하여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다. 현재 도로에 의해 성벽의 한쪽이 잘려져 있는 비대칭의 형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미학적으로는 독특한 미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추진과 함께 이 탕춘대성도 확장 등재될 가능성이 높아 정비가 추진된다고 하니 머잖아 말끔히 단장된 탕춘대성의 새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은 홍제천 아래쪽에서 홍지문과 오간수문을 올려다보며 그린 것이다. 오간수문 위쪽으로 상명대학교 캠퍼스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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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홍은사거리에서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오르다 보면 왼쪽 능선으로 상명대학교 캠퍼스가 올려다보인다. 상명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위쪽으로 200m가량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단아한 정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 일대의 지명을 짓게 해 준 ‘세검정’이란 정자다.

 

홍제천이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정(丁)자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세검정은 예로부터 멋진 풍광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지금도 홍제천 좌우로 많은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해도 세검정 아래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여전히 멋진 풍광이 뿜어져 나온다. 세검정(洗劍亭)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 김유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경치가 빼어났기에 왕과 사대부, 여염집 자제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노닐며 시를 짓고 바위에 글씨 연습을 하였다. 계곡 위쪽에서 바위 사이를 굽이치는 물결과 쏟아지는 폭포는 많은 선비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유혹하여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조리게 만들었다. 세검정의 가장 멋진 구경거리가 소나기가 쏟아질 때의 폭포 구경이었다 하니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정자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은 예사롭지 않았다 할 것이다.

 

운이 좋아서일까? 지난해 가을, 내가 이곳을 찾았던 그 날에도 가을치고는 제법 큰 비가 내렸다. 상류인 평창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는 홍제천으로 이어지면서 세검정에 이르러서는 멋진 풍광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정자 아래쪽 마당바위 앞쪽에 놓여진 홍제천을 가로지르는 보를 넘어선 세찬 물길은 세검정 옆을 오르내리는 차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폭포를 만들어 낸다.

 

지금도 이곳에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과거 이곳을 찾았던 옛 선비들의 서정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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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위치한 건국대에는 대학을 상징하는 넓은 호수가 캠퍼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호수는 그 면적이 약 2만평에 달해 서울에 있는 웬만한 대학 하나를 다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란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말을 키우던 목장의 습지였는데 습지를 정리하면서 그 물들을 모아 넓은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한시에 나오는 ‘일감(一鑑)’과 ‘활수(活水)’를 따와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뜻의 일감호(一鑑湖)란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지하철 2호선 건대역에서 내려 정문까지 이르는 길목은 58층 높이의 스타시티를 비롯한 복잡한 상업시설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복잡한 거리를 뒤로하고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드넓고 평온한 일감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호수를 둘러싼 둘레길은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잘 마련되어 있다. 호숫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를 바라보니 이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호수가 넓다 보니 체육대회 때는 이 둘레길을 몇 바퀴 도는 마라톤이 열리기도 하였다. 2학년 때 나도 출전하여 열심히 뛰었던 추억이 눈에 선하다. 호수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주변의 건물들은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호수 건너편 중앙에는 캠퍼스의 랜드마크인 새천년관이 우뚝 세워져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로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주변 조경과 더불어 멋진 파노라마를 구성한다. 좌측의 생명과학관 건물과 우측의 쿨하우스라 불리는 기숙사가 멋진 근경으로 다가온다. 호수의 우측 앞쪽에는 소가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와우도’로 불리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이 섬은 왜가리 집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그 앞으로 고요한 호수의 적막을 깨고 노니는 새들의 물장구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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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사이에 두고 캠퍼스의 좌측면을 연세대와 마주하고 있는 이화여대도 그 역사만큼이나 신촌골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는 곳이다. 2호선 이대역에서 정문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지나 정문에 들어서면 고려대의 중앙광장이나 새로 조성된 연세대의 백양로와는 또 다른 느낌의 열린 공간이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른바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라 불리는 공간이다.

 

2008년에 완공된 이 ECC는 1989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현상설계에서 당선한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선된 안이다. 과거 대운동장이 있던 곳에서부터 본관까지 이어지는 큰 계곡을 만들어 계곡 양옆으로 지하 6층까지 다양한 공간들을 집어넣었다.

 

 

이 계곡을 만듦으로 해서 캠퍼스 입구에서부터 본관까지 탁 트인 전망이 가능하게 되고 필요한 캠퍼스의 건축공간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끌어내었다. 지하라도 측벽의 넓은 채광면적을 통하여 어느 층에서건 충분한 채광이 이루어진다. 계곡의 끝부분에는 지하로 파 내려간 만큼 커다란 계단광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필요시 이곳은 대형 노천극장이 된다.

 

건물 윗부분은 조경으로 처리하여 원래 이곳의 지형이 초입에서 본관까지 완만하게 높아지는 구릉이었는데 그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한다. 2만평에 달하는 건축공간을 집어넣고도 지상에는 마치 아무런 건축행위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넓은 녹지공간이 조성되었다. 그 덕에 본관을 중심으로 왼쪽의 대강당이나 중강당 등 다수의 주요 건물들이 고딕풍으로 이루어져 있는 캠퍼스의 정체성이 더욱 돋보인다.

 

ECC는 명쾌한 형상으로 이화여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큰 볼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기존 건물들이 가지고 있던 캠퍼스의 정체성을 잘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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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art

도시의 풍경은 개별 건물들이 연속성을 이루어 만들어진다. 연속되어지는 건물과 조경이 어우러져 하나의 콘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기관이 대학이다. 대학 캠퍼스는 대학이 지니는 이념과 역사 등이 각각의 건축물에 스며들어 조경과 더불어 대학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서울 신촌에 있는 연세대도 타 대학과 구별되는 독특한 캠퍼스의 이미지가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최근 완성된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로 널찍한 공원이 도시민을 반긴다.

 

백양로 지하공간으로 주차장과 다양한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지상에는 차가 없는 보행자들을 위한 녹지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고려대 중앙광장에서의 시각적 개방감을 연세대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새로 조성된 백양로가 연세대의 주요한 캠퍼스 이미지를 만들어내긴 하였으나 연세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공간은 이 백양로의 끝 지점이다. 대학 본부로 사용되는 중앙의 언더우드관과 좌측의 스팀슨관, 우측의 아펜젤러관, 그리고 이 세 건물의 중앙에 위치한 학교의 창립자 언더우드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스팀슨관이 1920년 세 건물 가운데 2층으로 제일 먼저 건립되었고 이후 1924년 맞은편으로 배재학당을 설립하였던 아펜젤러를 기념하는 아펜젤러관이 세워졌다. 중앙의 언더우드관은 세 건물 중 가장 늦은 1925년에 지상 3층(중앙탑 5층)으로 지어졌다.

 

영국식 고딕풍으로 지어진 이 세 건물은 모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연세대의 상징적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 세 건물에서 보이는 석조의 고딕 언어들은 이후에 세워진 주변의 건축물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느지막이 지어진 모더니즘의 건물들도 주조를 이루고 있는 캠퍼스의 고딕 이미지에 동화되어 있다.

 

이들 역사적 건물을 중심으로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나무들은 서로 어울려 멋진 연세대의 캠퍼스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난가을 신촌골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시선을 멈춰 본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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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다운 눈이 전국을 덮었다. 서울에도 지난 주말 대설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 교통이 가장 큰 걱정이겠으나 다른 한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겨울의 마술쟁이다.

 

눈 내린 대학의 캠퍼스는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도심의 설경과는 자못 다른 서정이 묻어난다. 안암동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펼쳐지는 눈 덮인 캠퍼스의 모습이 그러하다.

 

 

고려대는 정문에서부터 광장 너머 좌우측 건물들이 모두 서양 중세의 성채 이미지를 풍겨낸다. 첨두아치로 된 창이나 뾰족지붕, 성벽 모양을 한 매스 등 고딕의 언어들 속에서 이 대학의 오랜 역사가 배어나온다. 정문 뒤로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중앙광장은 도심의 복잡한 거리에서 짓눌려 있던 도시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준다.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에 조성된 이 광장은 우선 학교를 드나드는 차량들을 모두 지하로 유도했다. 그 덕에 지상에는 시계가 탁 트인 넓은 녹지 광장이 조성되어 보행자들의 천국이 마련되었다.

 

광장 뒤편에 위치한 본관은 고려대의 모체가 되었던 보성전문학교 시절의 본관으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박동진이 설계한 고딕풍의 건축물이다. 본관 앞에는 설립자인 김성수의 동상이 중앙 축 선상에 놓여 캠퍼스의 중심적 위치를 웅변하고 있다. 좌우의 눈 덮인 숲 뒤쪽으로는 중세의 성곽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대칭을 이루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우측 건물은 대학원을 겸하고 있는 중앙도서관이고 좌측에 시계탑이 올라와 있는 건물이 문과대학이다.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앞쪽에 놓인 분수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이 넓은 녹지광장의 적막을 누그러뜨린다.

 

하얀 눈이 분수의 재잘거림도 덮어 잠재운 이 겨울,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마주하는 눈 내린 서정에 잠시 복잡한 마음을 침잠시켜 본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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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로터리 북쪽 SK주유소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주변 건물들과는 색다른 모습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박스 형상을 하고 있으나 중간에 V자 모양의 기둥이 상부의 액자처럼 생긴 매스를 지지하고 있는 독특한 형상의 건축물이다.

 

이 건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JCC(재능아트센터) 빌딩이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의 ‘본태박물관’이나 원주 오크밸리의 ‘뮤지엄 산’ 등 몇몇 작품이 지방에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 그의 작품이 세워진 것은 이 건물이 처음이다.

 

건물은 크게 2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에 V자형 기둥이 있는 건물이 공연장, 전시장이 있는 아트센터이고 그 뒤쪽에 있는 건물이 강연, 토론, 연구 등이 이루어지는 크리에이티브센터이다. 그림은 뒤쪽의 크리에이티브센터를 그린 것이다. 노출콘크리트를 이용한 기하학적 형태를 즐겨 사용하는 안도 다다오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다.

 

 

도로변으로 기다란 매스가 공중에 대각선으로 띄워진 형태를 하고 있어 강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이 대각선의 매스는 그 내부가 계단형의 오디토리엄으로 내부의 기능을 그대로 감싼 형태이다. 하부에는 기둥을 생략함으로써 시원한 공간감이 연출된다. 최대한의 실내공간을 만들려고 대지를 벽체로 가득 채우는 보통의 건축물과 달리 이 건물은 저층부를 과감하게 비워두었다.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시각적 개방감을 선사하고자 한 배려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출입구 전면에 걸쳐놓은 3개의 붉은색 철골은 ‘뮤지엄 산’ 입구에서 보이는 알렉산더 리버만의 붉은색 아치형 입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이미지로 느껴진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안도 다다오가 구상한 다양한 건축공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정원은 사방이 모두 트여 있어 서울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된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안도 다다오의 생각을 읽어본다는 것.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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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서울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뜻밖의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출구를 나오면 왕복 2차로의 차도에 접한 상가건물 뒤편으로 조그만 골목길 몇 개가 북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오래된 단층주택들에서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세월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이곳이 북촌보다 먼저 조성되었다는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1920년대에 개발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한옥단지로서 어언 1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주변의 빌딩숲에 가려 존재조차를 잊게 했던 이곳은 2004년부터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재개발의 열기는 활기를 띠지 못하고 130여개의 한옥이 그대로 남아 도심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이곳이 몇 해 전부터 한옥의 멋스러움, 전통 골목의 정감을 살린 멋진 공간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고즈넉한 한옥의 구조를 잘 살린 카페나 전통찻집, 음식점, 스튜디오 등이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이곳은 점차 멋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 도심 속에서 전통 한옥의 모습이 간직되어 있고 100년 전 도시 서민들의 생활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투어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 한옥 골목에서 바라보이는 서울 중심부 뒷골목의 풍경은 도시빌딩의 삭막한 분위기에 지쳐 있는 도시민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두 사람의 어깨가 마주칠 정도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세월의 때가 묻은 개량한옥의 처마와 그 위로 얽혀 있는 전선들의 모습은 중장년층들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골목 끝에 우뚝 서 있는 빌딩들은 이곳이 서울의 중심부라는 자존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이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조그만 한옥 카페가 도시의 유랑인들을 유혹한다.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직접 볶아서 내려주는 커피 한 잔과 마주하는 익선동 서민 한옥의 구조미는 각박한 도시민들의 마음을 녹여준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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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북단에는 천주교의 성지이자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절두산 순교성당이 있다.

강변북로를 달리며 서강대교에서 양화대교 쪽으로 진행하다보면 우측으로 독특한 형상을 한 절두산 순교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였다. 이 양화나루에는 지형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과 유사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 이름 지어진 높이 20m의 언덕이 있었다.

 

양화나루터는 이 잠두봉과 어울려 빼어난 풍치로 이름이 높았다. 이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조선의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은 이곳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고 시를 짓는가 하면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꼭 들를 만큼 유명한 명승지였다.

 

 

그러나 이 언덕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1만명에 가까운 천주교인들이 참수를 당했던 곳이 되어 절두산(切頭山)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던 1967년 이곳에 이희태의 설계로 성당과 박물관이 세워졌다. 절벽 끝에 위치한 성당은 사다리꼴 평면에 원형의 지붕을 얹은 100여석의 아담한 규모이다. 원형지붕은 선비의 ‘갓’을 표현한 것이고, 우뚝 솟아있는 종탑은 천주교인들을 참수할 때 쓰던 칼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그림에서 성당 우측에 길게 놓인 부분이 박물관이다. 역시 갓 모양의 넓은 지붕을 받치는 쌍둥이 기둥들은 발코니에 열을 지어 있는 모습으로 독특한 형태미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우리의 전통 요소가 콘크리트를 통하여 표출된 건축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언덕 아래 강변도로에서 올려다보이는 성당의 모습과 나무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 옛날 선비들이 즐겨 찾던 명승지 양화진이 다시 재연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순교가 서려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는데 그저 아름답게만 느낄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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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나무들도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잎들을 떨어내느라 부산하다. 멀어져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얼마 전 부암동에 있는 서울미술관을 찾았다. 박스형 건물로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미술관에 발길을 들여놓는다. 내년 1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특별기획전 ‘비밀의 화원’이 비중있게 전시되고 있다. 영국의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집필한 동화 <비밀의 화원> 내용을 바탕으로 국내외 작가 20여명의 시선을 모은 전시회이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옥상으로 올라가니 도로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왕산의 동북쪽 사면을 배경으로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자리 잡은 멋진 한옥 여러 채가 주변의 수목들과 함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이 흥선대원군이 흠뻑 빠져 빼앗다시피 한 석파정(石破停)이다. 이 건물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서(별장은 잠깐씩 와서 쉬어가는 공간인데 반해 별서는 오랜 기간 동안 생활을 하는 가옥을 말함)였다. 이 별서가 대원군의 소유가 된 배경은 이러했다.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은 북문 밖 삼계동에 장안에 으뜸가는 별서를 가지고 있었다. 대원군이 이 건물에 반하여 건물을 사려고 하였으나 흥근은 거절하였다. 이에 대원군은 머리를 써서 흥근에게 하루만 빌려 달라고 하여 허락을 얻어내고 임금을 권해 이 별서에 임금이 묵도록 하였다. 흥근은 임금께서 계셨던 곳을 신하의 도리로 감히 쓸 수 없다 하여 다시는 이 별서에 가지 않게 되었고, 결국 이 별서는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한다.

 

김흥근이 소유했을 때는 이곳이 삼계동 정사라는 명칭이었으나 대원군은 앞산이 모두 바위라서 자신의 호를 석파(石坡)로 바꾸고 이곳에 있는 정자의 이름도 석파정(石坡停)으로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일반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으나 서울미술관 옥상 정원에서 바라보는 외관은 어떠한 미술작품보다도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이 한 장면만으로도 이 한옥의 경내를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충분히 달랠 수 있으리라. 석파정. 최고의 권력가가 자신의 호까지 바꿀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졌던 건물 앞에서 멀어져 가는 가을을 잠시 붙잡아 본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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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10월도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났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얄미운 것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멀어져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가을에 젖어 있는 서울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아본다. 단풍이 곱게 물든 서울의 주변 산은 이러한 갈망을 갖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어머니의 품처럼 다가온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를 탐방할 수 있는 둘레길을 모두 완성하였다.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등 내사산(內四山) 및 한양도성을 잇는 ‘내사산둘레길’(한양도성길 18.6㎞)과 관악산, 북한산, 수락산, 아차산 등을 잇는 서울 외곽의 ‘외사산둘레길’(157㎞)이 그것이다.

 

이렇게 멋지게 조성된 둘레길을 찾는다는 것은 타오르는 단풍의 계절에는 더더욱 멋진 낭만이리라. 내사산둘레길은 바쁜 도시민들이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큰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트레킹 코스다.

 

내사산둘레길은 낙산구간, 남산구간, 인왕산구간, 북악산코스 등 4개 구간으로 나뉜다. 그 가운데 돈의문 터에서 시작하여 창의문까지 이어지는 4㎞의 인왕산구간을 올라 본다.

인왕산(338m)은 조선의 주산인 북악산을 중심으로 좌청룡인 동쪽의 낙산과 함께 서쪽의 우백호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선바위, 범바위, 치마바위, 기차바위 등 기암괴석이 많은 아름다운 산으로 서울시민에게 인기가 높다.

 

그림은 인왕산 정상에 서서 올라왔던 아래쪽을 바라본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성곽길을 따라 연결된 앞쪽으로 자리 잡은 범바위가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 너머로 무악재의 아파트 단지들과 서대문 일대, 그리고 도심의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빌딩 숲 뒤로 우뚝 솟아 있는 남산과 남산타워가 이곳이 서울의 중심부임을 알려 준다.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이다. 인왕산 정상에서 멀어져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가을에 흠뻑 빠져 있던 서울을 이렇게 담아 본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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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법 가을이 깊이 영글었다. 여름이 무더웠던 탓인지 10월이 한참 지났음에도 지난주까지는 여전히 녹음이 짙었는데 이제는 가로수에서도 강한 단풍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돈화문을 거쳐 창덕궁 경내로 들어서면 수백년 묵은 고목들이 전해오는 가을 내음은 도시민의 피로를 한순간 사라지게 하리라. 자연 지형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운 배치로 이루어진 창덕궁의 궁궐 건축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자연스레 뒤쪽의 후원으로 발걸음을 잇는다.

 

 

창덕궁의 후원(後苑)은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불렀던 용어이다. 지세를 그대로 살리면서 인위적인 면을 최소화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후원 중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부용지 주변이다. 부용지는 사각형의 연못으로 가운데에는 원형의 인공 섬이 있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라는 원리를 담고 있다.

 

그림에서 좌측에 보이는 정자가 부용정인데 두 개의 기둥이 연못 속에 담겨 있는 십자형 평면을 하고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여러 단의 기단 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주합루이다. 1층은 왕실 도서관 격인 규장각, 2층은 열람실 겸 누마루로 사용되어 왔던 공간이다. 우측에 있는 건물은 영화당으로 이 건물의 우측 마당은 과거 시험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조선시대 과거는 세 단계로 치러졌는데 이 영화당 마당이 왕 앞에서 보는 마지막 단계의 시험 장소였다. 부용정과 주합루, 영화당이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부용지를 중심으로 하나로 통합되어 멋진 풍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풍광을 흑백으로 드로잉하여 그 위에 좀 더 늦은 가을의 분위기로 색채를 입혀봤다. 도심에서 세월의 고즈넉함과 짙어가는 가을의 짙은 색채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바로 이곳 창덕궁의 부용지가 아닌가 싶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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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주위의 녹음들이 형형색색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이즈음, 서울에서 가장 가을의 향기를 잘 맡을 수 있는 창덕궁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현대빌딩과 아라리오 미술관(구 공간 사옥)을 지나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 다다른다. 주위에 큰 건물들이 바싹 붙어 있어서일까? 광화문의 웅장함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아늑하게 느껴지는 포근한 돈화문의 모습이다.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렸다.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궁궐이다. 이 궁은 조선 초부터 많은 임금들이 법궁인 경복궁을 대신하여 찾았던 곳으로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868년 재건될 때까지 가장 오랫동안 실질적인 정궁의 역할을 했다.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과 선정전을 중심으로 한 치조(治朝) 영역, 희정당과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침전 영역, 동쪽의 낙선재 영역, 그리고 북쪽 언덕 너머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궁인 경복궁은 평지에 건립되어 왕실의 위엄을 잘 나타낼 수 있도록 주요 전각들이 좌우대칭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에 반해 창덕궁은 구릉지에 자리 잡은 궁으로 주변의 구릉을 최대한 살리는 배치기법을 사용하여 주요 전각들이 약간씩 비틀어져 자리 잡고 있어 경복궁의 배치기법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렇게 자연에 순응하는 건축미는 한국의 유일한 궁궐 후원인 창덕궁 후원에 들어서면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앞쪽의 종묘와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복궁에 가까운 서쪽 측면으로 위치를 옮긴 돈화문조차도 전체적인 창덕궁 배치에 자연스러움을 더해준다. 자연에 묻혀 마치 자연 그 자체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창덕궁이 이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림은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단풍이 물든 창덕궁 전체의 모습을 표현해 본 것이다. 이 가을에 잠시 짬을 내어 자연미 물씬 풍기는 창덕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을 내음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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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던 기록적인 폭염도 이제 서늘한 바람 앞에 흔적을 감췄다. 푸르렀던 녹음도 서서히 형형색색의 색깔로 몸단장하는 시간이다. 상큼한 이 계절, 도시의 공간감을 느껴볼 수 있는 광화문광장으로 발길을 옮겨 본다. 좀 더 넓은 모습을 보기 위해 광화문광장의 주변 건물 높은 곳에 올라 북쪽을 바라본다.

 

광화문과 뒤쪽에 펼쳐져 있는 경복궁이 북악산을 등에 지고 멋진 풍광으로 나를 맞이한다. 경복궁(景福宮)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조선왕조의 법궁(法宮·정궁)이다. ‘경복(景福)’은 시경에 나오는 말로 왕과 온 백성들이 큰 복을 누리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 궁은 백악산(북악산)을 배경으로 좌측에는 낙산, 우측에는 인왕산이 있고 앞쪽으로 청계천이 흐르는 길지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됨에 따라 정궁의 역할이 창덕궁으로 넘어갔다가 조선말기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었다.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은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축물로서 조선 초기 여러 왕들의 즉위식을 비롯한 왕의 집무 기능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2010년 복원이 완료된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광화문에는 총 3개의 문이 있는데, 가운데 큰 문은 왕이 다니던 문이고, 나머지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다니던 문이다. 요즘 경복궁을 비롯한 북촌, 인사동 일대에는 형형색색의 멋진 한복을 입고 투어링을 하는 국내외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고즈넉한 고궁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거니는 여성들을 보면 마치 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멋지게 물들어가는 북악산의 단풍과 밝은 미소를 머금은 한복 입은 여성들의 모습에서 더욱 아름다워져 가는 경복궁의 가을을 기대해 본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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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를 나와 서울대병원 입구로 들어서면 좌우로 밀림 같은 병원 건물들이 나를 에워싼다. 정면으로 보이는 본관을 비켜서 왼쪽의 낮은 경사로를 오르면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붉은 벽돌의 단아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현재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한의원 본관이다. 1907년 고종 황제의 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한의원은 교육, 진료, 보건행정 기능을 모두 갖춘 국내 최고의 종합 의료기관이었다.

 

 

대한의원은 한일병합 후 총독부 의원이 됐다가 1926년 경성제국대학 병원으로, 해방 이후엔 서울대 부속병원이 됐다. 1908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조선 말기 재무행정을 관장하던 관청인 탁지부에서 설계와 감독을 했는데 탁지부 소속 기사인 야바시 겐키치가 설계를 주로 담당했다. 이 건물은 조선은행 본관(현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서울 을지로 2가 구 외환은행 자리)과 함께 1900년대 초 서울의 3대 명물로 손꼽혔던 건물이다. 중앙의 시계탑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의 2층 구조인 이 건물은 주 출입구나 창 부분은 르네상스풍의 디자인 모티브를 취하고 있다. 시계탑 상층부는 곡선미학의 바로크풍이 섞여 있는 절충주의 양식으로 분류된다.

 

중앙의 시계탑은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시계탑이다. 기계식으로 유일했던 것을 1980년 전자식으로 바꿨다. 건물 2층에는 서양의학 도입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건물 앞쪽의 넓은 정원에서 바라보이는 건물의 아늑한 모습은 환자들이나 내방객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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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대문시장 앞 한국은행 교차로에는 넓은 사거리를 바라보며 이국적 형태를 뽐내고 있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 청사, 경성역사(서울역), 조선호텔 등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의 전반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이름이 높았다.





유럽의 성채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단아한 르네상스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좌우 원형의 돔 부분과 몸통과 지붕을 연결하는 연결부위에 바로크풍의 장식 요소를 곁들인 절충주의 양식으로 분류된다.



이 건물은 1907년 일본의 침탈이 시작될 즈음 일본인 다쓰노 긴고에 의해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설계되었다. 1912년 조선은행으로 명칭을 바꾸어 완공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직속은행의 역할을 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87년 이 건물의 뒤편으로 한국은행 신관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한국은행 본관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한국은행의 주된 기능이 신관에서 이루어지게 되면서 이 건물은 2001년부터 화폐박물관으로 변신하여 시민들의 발걸음을 맞이하고 있다.



뒤쪽에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신관은 비교적 단순한 매스로 앞쪽의 구관의 형태가 이지러지지 않도록 배려한 모습이 돋보인다. 같은 화강석 마감으로 한국은행이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면서 큰 스케일의 형태적 우월성을 차분한 모더니즘의 모습으로 절제하여 전체적으로 신구 두 개의 건물이 한 덩어리로 느껴질 수 있게 하였다. 상부에 옆으로 길게 놓인 고전주의의 언어인 열주는 앞쪽에 놓인 구관의 역사주의의 컨텍스트를 연장해 보려는 애교로 보인다.



구관인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비록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대의 산물이기는 하나 이 역시 우리의 역사이고 건축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건물이어서 우리에게는 귀중한 사료 중 하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화폐 역사와 문화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인 만큼 많은 자라나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의 발걸음도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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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시청역에서 나와 대한문을 거쳐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불현듯 담은 영국대사관 쪽으로 꺾인다. 그 꺾인 영국대사관 길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이국적 풍경의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서울성공회 대성당. 연속된 아치와 유럽풍의 오렌지색 기와로 지붕이 마감된 고즈넉함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다.

 

 

유럽 중세의 고딕 성당이 나타나기 전에 로마인(Roman)들이 사용하던 기술(Esque)둥근 아치를 즐겨 사용한 양식이라 하여 로마네스크(Romanesque)’라 불리는 건축양식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손꼽히는 이 건물은 영국인 아서 딕슨의 설계로 19261차 완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당시에는 예산부족으로 설계자가 의도했던 전체의 그림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는 1993년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초기의 설계안대로 건물을 완성하자는 건축운동을 전개하였다. 앞서 서울시로부터는 미완성의 형태인 기존의 건물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어서 원래의 도면으로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 한 증축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난관에 빠져 있던 성공회 측에서는 어느날 한 영국 관광객으로부터 런던 교외에 있는 렉싱턴 도서관에 이 성당의 도면이 보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성당 대표들은 곧바로 영국으로 날아가 그 도면을 복사하여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함으로써 증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증축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1996, 미완성이었던 건축물은 70년 후에야 원래의 설계안대로 완공을 보게 되었다. 대성당 뒤쪽에는 한옥으로 지어진 주교관과 수녀원, 경운궁 양이재가 서양식 대성당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이재는 구한말 덕수궁 내에서 대한제국의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데 성공회에서 이를 매입하여 대성당 뒤편에 옮겨 놓았다. 대성당의 서양 양식과 한옥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동서 간 만남의 장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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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전철 안국역을 나와서 창덕궁 방향으로 가다 보면, 현대사옥 끝자락에 위치한 건물 상단에 空間, SPACE’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현대건축에 큰 족적을 남겼던 김수근(1931~1986)’의 대표 유작이다. 그가 만든 설계사무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건축을 포함한 국내 최장수 예술잡지 空間(공간)’을 지칭하기도 한 이름이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담쟁이로 인해 시원스레 보이는 이 건물은 반 층씩 층을 엇갈려 설계되었고 그 반 층을 오르내릴 때마다 크고 작은 다양한 공간들이 끊임없이 연결된다.

 

휴먼스케일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이 건물은 건축인들에게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특히 지하에 있는 소극장은 김덕수 사물놀이를 탄생케 하는 등 수많은 예술 활동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었다. 옆쪽에 투명한 유리로 지어진 신사옥은 김수근의 뒤를 이어 공간을 이끌었던 장세양(1947~1996)이 설계한 것이다.

 

김수근은 자신의 책상 앞에 있는 창을 통해 창덕궁을 바라보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았다 한다. 장세양은 돌아가신 스승 김수근이 책상 앞 유리창을 통해 창덕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신사옥을 투명한 유리로 마감하였다 한다.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나 제자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잘 배어나오는 대목이다. 근래에 설계사무소의 운영이 어려워져 매각하기에 이르자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이 건물의 보존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 결국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새로 건물을 인수한 아라리오 미술관에서도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미술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람이라면 김수근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통하여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공간사옥이 앞으로도 많은 이에게 건축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산실로 남아있기를 기대한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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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대교 남단에 위치한 반포 한강 시민공원에는 독특한 형상을 한 4개의 건축물이 자리잡고 있다. 철과 유리를 주재료로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세빛섬으로 불리는 건축물들이다.

 

가빛, 채빛, 솔빛, 예빛의 네 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중 예빛 건축물을 뺀 세 개의 건축물을 지칭하고 있다.

 

 

이 건축물들은 땅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부유식 함체 위에 구조물이 올려져 있어 공식적으로는 선박으로 분류된다.

 

이 세빛섬은 지난 2006년 시민들의 상상과 제안을 정책으로 반영한다는 뜻에서 한강에 인공섬을 띄워보자는 시민 제안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섬이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핵심사업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난항에 부딪혔다. 사업의 확대, 사업시행자 변경, 운영사 선정 문제 등으로 이 구조물들은 오랜 시간 동안 흉물로 방치돼 왔다. 그러다 2년 전 서울시와 ()효성이 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면서부터 세빛섬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세빛섬에서 가장 큰 섬인 왼쪽의 가빛섬은 고급스럽고 우아한 빛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활짝 핀 꽃 모양을 형상화한 형태이다.

 

오른쪽의 채빛섬은 밝고 화려하고 즐거운 빛이 가득하다는 뜻으로 피어나는 꽃봉오리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가운데 있는 솔빛섬은 본보기가 되는 빛이라는 뜻으로 꽃의 씨앗 모양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가빛섬 왼쪽에 있는 미디어아트 갤러리 예빛은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무대공간으로 활용된다. 웨딩홀, 카페, 레스토랑, 전시장 등으로 활용되는 세빛섬은 밤이 되면 더욱 멋진 공간으로 변신한다. 옆 반포대교의 무지개분수와 더불어 세빛섬 모든 건물들의 표면에서 시시각각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의 향연은 여름밤 한강을 아름답게 수놓는 놓칠 수 없는 풍경이 된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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