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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에 해당되는 글 63건

  1. 2018.10.11 박세당 고택
  2. 2018.09.27 우저서원
  3. 2018.09.13 김포성당
  4. 2018.08.30 문수산성
  5. 2018.08.16 덕포진
  6. 2018.08.06 대명항
  7. 2018.07.19 양주관아
  8. 2018.07.05 양주향교
  9. 2018.06.21 가나아트파크
  10. 2018.06.07 장욱진미술관
  11. 2018.05.24 기산저수지 안상철미술관
  12. 2018.05.10 숲속의 섬
  13. 2018.04.27 흥국사 약사전 언덕에서
  14. 2018.04.12 호수공원의 벚꽃
  15. 2018.03.29 행주산성 충장사
  16. 2018.03.15 동화마을 프로방스
  17. 2018.02.19 율곡 자운서원
  18. 2018.02.01 고령산 보광사
  19. 2018.01.18 반구정
  20. 2018.01.05 보산동 외국인 관광특구

의정부 장암역 주차장 맞은편에는 하나의 판에 4개나 되는 문화재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서계 박세당 사랑채와 박세당 묘역, 노강서원, 석림사 등의 존재를 알리는 표지판이다. 수락산 등산로이기도 한 계곡변 좁은 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노라면 계곡 건너편에서 고즈넉하게 계곡 쪽으로 긴 처마를 드리우고 있는 오래된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박세당 고택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계곡 쪽에 위치한 출입구는 문이 잠겨 있어 고택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여 계곡과 고택의 지붕이 어우러지는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오르던 길을 잠시 멈춰서 본다. 도로가 등산로이다 보니 연변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간판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있어 고풍스러운 한옥의 풍광이 제 맛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등산객이 많지 않던 시절 이런 계곡에 접해 있는 한옥의 누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멋진 시 한 수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 고택의 주인이었던 서계(西溪) 박세당(1629~1703)은 32세 때 문과에 장원한 후 내외 관직을 두루 맡아 일을 하다가 결국 학문적 신념 때문에 40세에 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낙향하여 집필과 제자를 가르치던 그는 이곳 사랑채에서 농사 관련 저술인 <색경(穡經)>을 집필하여 실사구시의 사상을 피력하였다. 그의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저서 <사변록(思辨綠)>은 당대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결국 ‘사문난적(斯文亂賊:못된 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몰리고 유배되는 등 힘든 말년을 보내게 된다.

 

서계 고택은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고 바깥사랑채만 남게 되었다. 관어정(觀魚亭)이라고 현판이 씌어있는 바깥사랑채 뒤쪽에는 전쟁 때 타고 남은 안채의 자재들을 모아 건립한 영진각(影眞閣)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서계와 부친 박정(朴炡)의 영정 2점이 모셔져 있다. 사랑채 앞쪽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이 장소의 세월과 품격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서 서쪽을 바라보노라니 도봉산의 위용이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종부 김인순씨(65)와 사학을 전공했다는 며느리의 손길이 부산하다. 영진각에 모신 두 분의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준비하느라. 정2품 이상의 선조를 모신 가문에서나 가능하며 4대가 지나도 영구히 위패를 사당에 두면서 지내는 제사라 한다. 문중이 모여들 마당에 설치된 많은 행사용 천막의 숫자에서 이 가문의 기풍이 느껴진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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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대로 북변 사거리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이어진 중봉로로 접어든다. 직선의 도로가 크게 왼쪽으로 선회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로 내비게이션이 나를 안내한다. 좁은 길로 300m가량 직진하니 왼쪽으로 연잎이 무성한 연못 뒤쪽으로 우저서원의 단아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우저(牛渚)서원은 중봉 조헌(重峯 趙憲, 1544~1592)의 생가 터인 김포시 감정동에 인조시대인 1648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중봉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도끼를 지고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도끼상소로 유명하다. 이듬해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게 점령되었던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10배가 넘는 왜군과 맞서 싸우다 700의사와 함께 전사한 의병장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1671년에 ‘우저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는데 서원 주변에 소들이 물을 먹는 늪지가 있어서 ‘우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이 우저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은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김포평야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솟을대문으로 된 외삼문을 들어서면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강학 공간인 여택당(麗澤堂)이 있다. 팔작지붕의 여택당 뒤쪽으로 놓여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향 공간이 자리한다. 그 안쪽 중앙에 조헌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 위치해 있는데 조헌의 시호인 ‘문열(文烈)’을 따라 ‘문열사(文烈祠)’로 불리고 있다. 보통 사당 앞에는 제향의식에 필요한 공간인 동무, 서무가 있는데 이 서원은 내삼문과 사당과의 간격이 좁아 우측에 조헌선생유허추모비를 모신 비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우측에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서원의 운치를 더해준다.

 

서원 주변에는 도로명과 공원명, 마을명이 모두 ‘중봉’으로 되어 있다.

추석도 지났으니 이제 우저서원의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단풍으로 곱게 물들 것이다. 단풍 가득한 우저서원의 가을 운치가 눈앞에 그려진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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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14년 만의 기록적 폭염이었다니. 그런데 계절의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9월이 되자마자 갑자기 이렇게 가을 날씨로 확 바뀌는지.

 

가을과 함께 개강을 했다. 몇 편의 김포 원고를 쓰다 보니 알고 있는 김포의 이야기 소재가 동이 났다. 그런데 개강하는 날 같은 건물에 있는 미대 교수를 건물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김포 출신의 교수였다. 혹시나 하고 김포에 소재한 흥미있는 건축물의 존재 여부를 물었더니 대뜸 김포성당을 소개한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자신의 학창시절 추억이 배어 있는 곳이란다. 그래서 김포성당을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소나무숲 언덕을 배경으로 구 성당과 새 성당이 함께 놓인 사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차를 몰아 김포로 향했다. 낮의 해는 여전히 따가웠지만 늦은 오후가 되니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코밑을 간지럽힌다. 일산대교를 건너 김포시청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측으로 난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좁은 길을 들어서자마자 우측 경사로 위의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를 하고 성당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인터넷에서 보던 이미지가 눈앞에 다가섰다. 1999년에 붉은 벽돌 마감으로 지어진 새 성당은 단차가 있는 맛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 전면에는 고딕성당의 요소인 장미창(rose window)이 현대적으로 디자인되어 좌측의 높다란 종탑과 어우러져 건축적 완성도를 높여준다. 우측으로 완만한 돌계단이 길게 이어진 정점에 석조로 지어진 구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커다란 소나무숲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구 성당은 1956년에 건립되었는데 한국전쟁 이후 건축된 석조 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어 2013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평면은 고딕건축에서 주로 사용되던, 앞뒤로 길쭉한 실내의 안쪽 좌우로 날개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세로로 긴 십자형(라틴크로스,†)으로 되어 있다. 전면 종탑 아래쪽을 둘러싼 첨두(뾰족) 아치의 창이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두꺼워지는 지지벽은 고딕건축의 요소이다. 그런데 주출입구 원형의 아치와 종탑 위의 뾰족 돔은 르네상스 요소에 가깝다. 또한 건물 측면에 뚫린 박스형의 세로창들은 모더니즘의 요소이니 결국 구 성당의 건축양식은 여러 양식이 혼합된 절충주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우측으로 울창한 소나무숲이 발길을 이끈다. ‘십자가의 길’로 조성된 오솔길이 구 성당과 새 성당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오랜 세월 이 언덕을 지켜왔을 수많은 소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늘어뜨려 낯선 방문객을 붙잡는다. 소나무들 사이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구 성당과 새 성당이 서로 병치되어 멋진 풍경화 한 점을 만들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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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여 서해로 빠져나가는 길목인 경기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에는 개량 한옥으로 지어진 처의 본가가 있다. 그 집 대문 앞에서는 철책선 너머로 북한 땅이 보인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과거 대북확성기를 틀 때면 밤새 시끄러운 대북방송이 이 마을의 밤풍경을 대변해주었다.

 

이 집의 대청마루에는 처가댁 어른들이 신주 모시듯이 고이 모시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그 액자에는 처의 선조 할아버지가 고종황제로부터 받은 ‘절충장군 겸 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임명한다는 교지가 들어 있다. 군인으로서 매우 높은 위치까지 오르셨다는 증표여서 처가에서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산이다. 할아버지 나이 30세 때 병인양요(1866)가 일어났고 프랑스군과 격전이 벌어졌던 문수산성이 집에서 직선거리로 겨우 5㎞ 떨어져 있으니 분명 이 할아버지는 군인으로서 이 전장에 계셨을 것으로 처가에서는 믿고 있다. 처가 식구들에게 문수산성은 성지와 같은 곳이 되었다. 

 

문수산성은 김포시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376m)을 둘러싼 산성으로 조선 숙종 때 축성되었다. 이 산성은 염하강 건너 강화도의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는 요새였다. 병인양요 때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은 강화도와 전략적 요충지인 문수산성을 점령하게 된다. 이후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프랑스군 몰래 강화도의 정족산성을 점거하고 진을 친 다음 공격해 오는 프랑스군을 격퇴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패한 프랑스군은 분풀이로 문수산성의 남문을 비롯한 부속 건물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문수산성은 1993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복원사업에 따라 북문과 남문 그리고 정상의 장대를 비롯한 성곽의 일부가 복원되었다.   

 

무덥던 어느 날 처와 함께 장인어른 내외를 모시고 문수산성을 찾았다.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잠시 오르니 문루 지붕이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늘이 우리를 맞이한다. 염하강 물줄기가 맞닿는 한강 하구 저 너머로 나지막한 산들이 겹겹이 쌓인 북한의 원경이 바라다보인다. 장인어른의 표정이 묵직하시다. 이곳에서 프랑스군과 접전을 벌이셨을 선조 할아버지의 힘찬 기개를 느껴보시려는 듯.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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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서쪽 끝단의 대명항을 돌아보고 차를 돌린다. 진입로를 빠져나와 4거리에 이르니 왼쪽으로 덕포진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좁은 도로를 따라 2㎞ 남짓. 덕포진의 너른 주차장이 나를 기다린다. 주차를 하고 나지막한 언덕길을 오른다. 올라서니 솔밭 사이로 염하강과 그 너머 강화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잔디밭 사이로 포대가 줄지어 있다. 앞쪽에 놓인 포대가 ‘가’ 포대이고 우측 언덕 너머로 ‘나’, ‘다’ 포대가 이어져 총 15개의 포가 설치되었다 한다. 덕포진은 강 건너 강화의 덕진진과 함께 구한말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 때 이 사이를 지나던 프랑스와 미국 함대를 향해 맹포격하였던 격전의 현장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면 멋진 풍광이지만 외세에 대항하여 목숨바쳐 싸웠던 선조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언덕길을 따라 포대가 끝나는 지점에 잘 다듬어진 묘 하나가 눈에 띈다. 손돌묘이다. 고려시대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고종은 강화도로 피란하게 된다. 왕은 바다를 건널 배가 없자 손돌의 작은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물길이 좁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왕은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그의 목을 치라고 명령한다. 손돌은 이 지역이 물길이 험해서 그런 것이라 해명하였지만 왕은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 말하고 죽게 된다. 신하들은 손돌의 말대로 바가지를 띄워 바가지를 따라가니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하였다. 경솔했던 왕은 크게 뉘우치고 손돌의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한 뒤 사당을 지어 억울하게 죽은 그의 넋을 위로하였다 한다. 이후로 그의 기일인 매년 음력 10월20일에 진혼제가 올려지고 현재는 김포시에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또한 그의 기일 즈음에는 추운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는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원혼이 바람으로 변하여 ‘손돌바람’이라 불린다고 한다.

 

차를 움직여 덕포진을 나서는데 입구에 ‘덕포진교육박물관’이 또 발길을 막아선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사고 탓에 시력을 잃은 아내를 위해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이 오랫동안 수집해 온 자료들을 모아 3층짜리 건물에 마련한 박물관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학교의 모습과 교육사료들, 심지어 농경시설까지 3층 공간 구석구석 방대한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1960년대 풍의 교실에 놓인 오래된 풍금 앞의 장인어른은 자리를 뜨실 생각이 없다. 교육자였던 어른은 빛바랜 음악책에서 찾은 동요 ‘꽃밭에서’를 연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시던 그 시절로 돌아가 계셨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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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더위에 지쳐 있는 요즈음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탈출하고픈 마음일 게다. 기다렸던 태풍은 아쉽게도 한반도를 비껴가고 어느 지역에 소나기가 내렸다는 소식이 부럽게만 들린다.

시원한 소나기가 그리워지는 요즘, 얼마 전 빗방울이 떨어지는 날씨에 찾아갔던 대명항이 새삼 그리워진다.

 

처의 본가가 김포에 있어서 겸사겸사 처가 어른들을 모시고 집사람과 함께 김포시 서쪽 끝자락에 있는 대명항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연결하는 초지대교 전방에서 우측으로 연결되는 도로로 빠져나오면 대명항이 나온다. 대명항 앞에 놓여 있는 강화해협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에 남북방향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어 그 모양새가 꼭 강(江) 같다고 해서 ‘염하강(鹽河江)’으로도 불린다. 대명항은 규모가 아담하여 소박한 어촌의 풍취가 물씬 풍겨져 나온다. 입구로 들어서면 앞뒤로 주차장이 놓여 있고 그 중앙에 기다랗게 어판장이 놓여 있다.

 

어판장 앞에 주차를 하고 포구로 발걸음을 향한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 펄이 된 염하강의 너른 강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드러난 펄 위로 여러 척의 어선들이 서로 엉켜 있어 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안의 작은 포구의 풍경이 정겹게 다가온다. 고깃배들 뒤쪽으로 강화도를 이어주는 초지대교가 긴 수평선을 그려놓고 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탓에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먹구름은 회색빛의 펄과 어우러져 눈앞의 풍경은 온통 회색빛이다.

 

시계가 탁 트이는 바닷가 풍경을 뒤로하고 앞서 지나쳤던 어판장에 들어선다. 중앙에 넓은 통로를 두고 좌우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가게 이름이 충남호, 계룡호와 같이 모두가 배 이름이다. 어선을 운영하고 있는 선주들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가게 이름이 배 이름과 같단다.

 

그런 이유로 갓 잡은 해산물들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 밴댕이와 소라가 제철인지 모든 가게마다 잔뜩 쌓아 놓고 방문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어판장 옆에는 함상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군함과 구형 전투기, 장갑차 등이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놀이기구들과 함께 전시되어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함상공원 옆에는 평화누리길이라고 씌어 있는 조형물 게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덕포진을 거쳐 문수산성까지 이어지는 14㎞ 구간 둘레길의 시작이다. 염하강 변에 설치된 철책을 끼고 강 건너 강화도를 바라보며 걷는 이 길은 우리의 근현대사의 흔적이 배어 나오는 길이다.

 

아담한 포구와 함상공원, 둘레길까지 곁들여 있는 대명항.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꼭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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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청 앞 사거리에서 파주로 이어지는 서쪽도로로 조금만 가면 우측으로 누각이 있는 커다란 한옥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외삼문으로 불리는 이 대문 좌우에 낮은 담장이 크게 둘러져 있고 그 뒤로 여러 채의 한옥 건물들이 군집되어 있다. 지난 4월 복원을 마치고 일반에 개방된 양주관아이다.

 

양주관아는 조선 중종 때인 1506년 현재의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 의정부에 있는 양주군청으로 이전되기 전까지 417년간 경기도 제1의 도시이자 경제,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던 양주목을 관할하던 곳이다. 

 

양주는 수도 한양을 방위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조선시대 지방행정단위인 목, 부, 군, 현 중에 가장 큰 목으로 지정되었다. 고려 태조 때 현재의 서울 강북지역인 한양군을 양주로 개칭한 데서 유래하여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수도 한양을 제외한 한양의 동북부 대부분 지역이 양주목의 행정구역이었다. 

 

 

 

양주목은 현재로 말하면 양주시를 비롯하여 남양주시, 의정부시, 동두천시, 구리시와 서울의 광진구, 노원구, 도봉구, 중랑구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최대의 행정구역을 갖고 있었다. 그 넓은 행정구역을 관할했던 양주관아는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발굴과 복원사업 끝에 지난 4월 양주목사의 정무공간인 외아(外衙)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내아(內衙) 등 9개 시설이 복원되었다. 9개 시설의 규모만 해도 현재 정도이니 기록에 남아 있는 31개 시설의 규모를 생각하면 양주목사가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졌을지 짐작해 본다.

 

현재 비어 있는 외삼문 2층 누각에는 큰 북이 놓여 있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 북을 두드려 아침저녁의 시간을 알렸다 한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다시 단층의 내삼문이 기다리고 있다. 이 내삼문 안쪽에는 목사가 집무하던 동헌인 매학당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지방관의 집무공간은 관사인 내아의 동쪽에 있다 하여 일반적으로 동헌(東軒)으로 불렸다. 

 

동헌 앞 너른 마당에는 죄인에게 주리를 틀던 의자와 곤장대, 그리고 곤장을 치는 포졸 인형이 있어 그 모습을 보니 사극에서 보던 형벌 장면이 떠오른다. 동헌 좌우에는 관아에 필요한 보조기능의 동행각, 서행각이 있고 서편의 담장 너머에는 목사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내아가 부속건물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뒤편의 불곡산 자락이 겹겹이 쌓여 있는 한옥의 관아 건물들과 어우러져 멋진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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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청에서 파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98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를 달리면 우측에 양주시가 자랑하는 문화유산 세 곳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로 최근에 복원을 마친 양주관아가 도로에서 곧바로 눈에 띈다. 나지막한 담장 가운데 누각이 있는 커다란 외삼문이 양주관아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두 번째는 관아 우측에 위치한 국가무형문화재인 양주 별산대놀이 놀이마당이다. 둥근 지붕 위로 마스트들이 뾰족뾰족 올라와 있는 독특한 조형을 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이 놀이마당의 우측에 위치한 양주향교이다. 450년이란 긴 세월을 지켜온 커다란 느티나무와 이 나무 가지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전통건축물의 모습이 멋진 구도를 연출해 낸다.

 

 

조선시대 이 지방의 중등 교육기관이었던 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01년)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이후 1610년에 재건하였는데 한국전쟁 때 또다시 소실되자 유림들의 노력으로 지난 1984년에 옛 모습이 복원되었다. 입구의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너른 뜰 중앙에 팔작지붕을 한 명륜당이 자리하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강학공간이다.

 

대체로 명륜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양주향교에는 동재와 서재가 없다. 그 대신에 수령 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좌우에 한 그루씩 대칭으로 자리 잡아 배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명륜당 뒤쪽에는 제향공간이 있다. 앞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향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공간구성이다. 제향공간을 출입하는 내삼문은 문 3개가 서로 떨어져 있어 일반적으로 3개의 문이 하나로 되어 있는 형식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제례가 있을 때 사람들은 혼이 다니는 문인 중앙문은 이용하지 않고 동쪽 문으로 들어가서 서쪽 문으로 나온다. 닫혀 있는 내삼문 옆쪽의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안쪽을 둘러본다. 안쪽 끝 중앙에 맛배지붕 형식의 대성전이 위엄있게 자리 잡고 있다. 여러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이 향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대성전 앞쪽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건물인 동무와 서무가 좌우로 대칭으로 배치되어 제향공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명륜당으로 눈을 돌리니 문들이 활짝 열려 있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홍보자료를 보니 주말마다 이 공간에서 다도와 전통을 익히는 강좌가 이루어진단다. 문득 무더운 여름날 오후 고목들이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서 차 한잔을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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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 장흥 골짜기 초입에 들어서면 ‘장흥문화예술특구’라는 커다란 도로표지판이 시선을 가득 채운다. 특구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문화예술시설들 가운데 이 골짜기의 정체성을 결정짓게 한 곳은 초입에 있는 가나아트파크일 게다. 1984년 가나아트파크의 전신인 토탈미술관이 문화예술공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골짜기에 자리 잡았다. 이 미술관은 1980년대에 많은 젊은 연인들이 기차를 타고 장흥역에서 내려 즐겨 찾던 곳이다. 다양한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커피숍에서 마음에 드는 머그컵을 골라 커피를 주문한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빈 머그컵을 자신이 가지고 오는, 재미있는 추억을 간직하게 하는 교외의 미술관이었다. 2006년 이 미술관을 가나아트센터가 인수하게 된다. 가나아트센터는 이 미술관 명칭을 장흥아트파크로 바꾸고 일본인 건축가 우치다 시게루에게 마스터플랜과 건축물들의 디자인을 맡겼다. 또한 주위에 있는 모텔들을 작가들의 아틀리에로 개조했다. 평창동 가나아트와 인사아트센터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장 미쉘 빌모트의 손을 빌려 리모델링한 2개의 아틀리에에 많은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활동을 지원해 왔다. 이러한 아트파크의 노력은 양주시로 하여금 이 골짜기에 시립장욱진미술관이 들어서게 하고 모텔을 리모델링해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개조한 ‘777레지던스’도 탄생케 했다. 아트파크와 양주시의 노력으로 문화예술공간들이 주변에 더욱 늘어나면서 2008년에는 이 골짜기 전체가 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된다. 2015년 장흥아트파크는 가나아트파크로 다시 명칭이 바뀌었는데 결국 토탈미술관과 가나아트파크가 이 장흥 골짜기 전체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정착시키는 핵심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골짜기로 이어지는 2차선의 도로 왼쪽에 있는 흰색 별모양의 텐트구조물이 시선을 끈다. 파크로 들어서면 유명 조각 작품들이 너른 잔디 마당 곳곳에 펼쳐져 있다. 녹음이 짙게 깔린 잔디와 숲을 배경으로 흑색, 청색, 적색, 노랑색, 그리고 야외공연장의 백색 구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오방색을 연상케 하는 색상의 건축물들이 조각 작품처럼 세워져 있다. 극도로 절제된 직육면체 형태에 원색의 색채로 의미를 함축한 미니멀리즘 그 자체다. 건물의 용도는 다양한 어린이 미술관이나 어린이 놀이터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이 찾는다. 반 시게루가 디자인한 텐트 구조인 야외공연장의 별모양 형태가 모더니즘의 건축물과 멋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기차 레일 위에 열을 지어 있는 머리 없는 인체 조각들과 원색의 입방체 건축물이 묘한 조화를 보이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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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송추IC에서 내려와 고양시 방향으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우측에 장흥계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난다. 잠시 직진을 하면 ‘장흥문화예술체험특구’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판이 도로 위로 불쑥 드러난다. 이름에 걸맞게 청암민속박물관, 장흥아트파크, 송암스페이스센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장흥조각공원, 장흥조각아틀리에, 장흥자생수목원 등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들이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1984년 이 골짜기 초입에 지금의 가나아트파크의 전신인 토탈미술관이 처음 자리를 잡았다. 전원에 넓은 부지를 활용한 토탈미술관의 조각공원 덕분에 장흥은 단순한 계곡을 낀 유원지 차원을 넘어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를 찾으면서 주변에는 다양한 카페와 먹거리, 즐길거리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에 편승하여 모텔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자 이곳은 점차 예술적 이미지가 퇴색되어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들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의식있는 사람들과 양주시에서는 아름다웠던 1980년대의 향기를 되살려 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모텔들을 매입해 작가들의 스튜디오로 개조하고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 시설들을 이곳으로 유치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08년 장흥은 문화예술체험특구로 지정되었고 2014년 건립된 시립장욱진미술관은 이 문화예술특구의 거점공간이 되었다.

 

골짜기 중간 지점에 위치한 장욱진미술관은 화가 장욱진(1917~1990)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욱진은 박수근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이다.

최-페레이라 건축(최성희, 로랑 페레이라)에서 설계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디자인하였다 한다. 건물의 내외부가 모두 백색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지상에서 보면 극도로 절제된 형태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위에서 내려다보면 길다란 2개의 매스가 사선으로 서로 엉켜 꼬여있는 추상적인 형상을 하고 있다. 예각과 둔각을 사용한 절곡된 평면은 외부에서 보이는 잔잔함과는 대조적으로 강한 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

 

2014년 ‘김수근 건축상’, 영국 BBC ‘2014 위대한 8대 신설(new) 미술관’, 한국건축가협회의 ‘2014 올해의 베스트7’이 이 작품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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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송추IC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로 접어든다. 골짜기를 지나는 도로를 따라 고개 하나를 넘으니 왼쪽으로 장흥관광지를 경유하고 올라오는 도로와 합쳐진다.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또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왼쪽으로 길게 놓인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양주시 백석읍 기산리에 위치한 기산저수지이다. 멋진 풍광 덕에 주변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그 가운데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도로변에 ‘안상철미술관’이라 씌어 있는 입간판이 차를 멈추게 한다. 성신여대 예술대 학장을 역임한 안상철(1927~1993)의 작품과 다양한 기획전시가 이루어지는 미술관이다. 안상철은 실험적인 한국화에서 시작하여 서양화의 기법을 접목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경주해 왔다. 젊은 시절 그는 ‘국전이 낳은 최대의 스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여러 해 동안 대통령상을 비롯한 큰 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말년에는 자연의 돌이나 고목을 이용한 추상적인 입체작품을 많이 남겼다. 작품들 가운데는 조명이나 전동장치를 이용한 움직임을 묘사한 작품도 있어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 언어를 탐구해 온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1990년에는 부인인 화가 나희균씨(87)와 함께 기산저수지변에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1993년 그가 타계하자 가족들은 작업실 부지에 그를 기리는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2008년에 그의 아들인 안우성씨(온고당 건축사사무소)의 설계로 현재의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멋진 조경에 반쯤 감추어진 단층으로 보이는 미술관을 바라본다. 우측에는 건물의 지붕을 이용한 낮은 경사로가 지면과 이어져 있다. 이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지붕 위로 저수지의 멋진 풍광을 조망할 수 있으리라. 건물로 들어서면 대지의 경사를 의식한 듯 반 층씩 공간이 내려가게 되어 있어 실제로는 여러 층의 구조를 하고 있다. 카페의 큰 유리창 너머로 넓게 펼쳐진 저수지의 풍경이 눈을 가득 메운다.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아래층 정원으로 나오니 예쁘게 가꾸어진 잔디밭과 수목들이 저수지와 어우러져 평안함을 더해준다. 뒤돌아본 건물의 모습은 입구에서 보았던 단아한 단층짜리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2층의 카페부분을 돌출시켜 강조한 매스와 유리, 돌망태, 노출 콘크리트가 어우러져 모더니즘의 단순한 형태 속에서도 다양성이 잘 표출되어 있다. 저수지의 싱그러움과 예쁘게 가꾸어진 정원이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의 격을 더욱 높여준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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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편을 마무리하면서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백마역 옆에 있었던 ‘화사랑’이라고 하는 카페이다. 198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신촌역에서 경의선에 몸을 실어 40분 남짓 거리에 있는 백마역에 내렸다. 백마역에서 5분 거리, 철길 우측에 위치한 화사랑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림이 있는 사랑방’이라는 의미의 ‘화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카페는 주인장의 여동생 김애자씨가 시낭송회나 음악회 등의 다양한 예술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들의 낭만과 정신을 담는 공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박사과정 때인 1980년대 후반. 문화운동을 한답시고 백마역의 화사랑을 예로 들며 주변사람들을 설득하곤 했었다. 지금도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술활동의 성공 모델로 화사랑에 대한 아련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마침 일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한 친구가 화사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 친구의 부인과 함께 화사랑을 이끌어 온 김애자씨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일산 풍동 애니골 입구에 있는 ‘숲속의 섬’이라는 카페가 그녀가 있는 곳이었다. 벚꽃이 운치있게 흩날리는 진입로 안쪽으로 아담한 단층짜리 벽돌조 건물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담쟁이로 휘감긴 건물의 외관과 함께 인테리어도 마치 1980년대에 와있는 듯 질박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69세라고는 믿기지 않게 단아한 모습의 그녀는 자신이 운영해 온 카페 변천사를 내게 전해주었다.

 

화사랑에서 시작하여 ‘썩은 사과’ ‘초록 언덕’ ‘섬’ 그리고 지금의 ‘숲속의 섬’에 이르기까지.  카페 안에는 그녀가 가장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60여권의 방명록이 있다.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이 방명록에는 1980년 화사랑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즐겨 찾았던 시인과 정치인 등 많은 저명인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쪽에는 오래된 풍금과 업라이트 피아노, 심지어 그랜드 피아노까지 놓여 있다.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오랜 기간 시낭송회를 이어오고 수많은 음악인들이 거쳐 갔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성악을 하는 나도 동료들과 함께 저 그랜드 피아노에 맞추어 이곳에서 작은 음악회를 한 번 했으면 하는 충동이 든다. 메뉴판에 씌어 있는 ‘since 1980’의 글귀처럼 화사랑, 아니 숲속의 섬 역사에 나도 하루쯤 넣어보고 싶다.

 

<윤희철 |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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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송추IC를 빠져나와 서울 방향으로 접어든다. 전면에는 북한산의 높은 봉우리들이 반갑게 펼쳐진다. 나지막한 경사로를 넘어 내리막길에 접어드니 탁 트인 시야에 왼쪽의 북한산, 오른쪽의 노고산이 만들어내는 골짜기 도로의 멋진 조망이 나를 기다린다. 스쳐 지나가는 우측의 노고산 예비군 훈련장을 보니 오래전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왔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경사로 끄트머리에 북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오늘도 산에 오르려는 많은 등산객들이 진입로 초입부터 부산하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500m가량 더 내려가니 우측에 ‘흥국사’라는 돌 팻말이 보인다. 좁은 2차로를 따라 주택가를 잠시 지나치니 곧 좌우로 나무들이 빼곡히 둘러싼 숲길로 접어든다. 행정구역상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에 위치한 흥국사 입구에 도착하니 단아한 크기의 일주문이 나를 반긴다.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북한산에서 수행하다 북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이 노고산 자락에 암자를 지었다. 대사는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라고 하며 이 암자의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불렀다. 이후 조선 숙종 때 이 절을 다시 지었고 영조 때는 이 절의 약사불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興國)’으로 바꾸고 왕실의 원찰이 되었다 한다.

 

일주문 옆에 차를 대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 끝에는 사람 키 높이로 원형의 석조 출입구를 한 불이문(不二門)이 기다리고 있다. 상대적 개념의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므로 한마음으로 수행하라는 뜻의 문이다. 불이문을 통과하니 ㄱ자 형태의 주택 같은 건물이 눈앞에 다가온다. ‘대방’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염불 수행 공간과 누·승방·부엌 등의 부속공간을 함께 갖춘 복합 법당이다. 뒤쪽의 안마당 중앙에는 다포식의 팔작지붕을 한 약사전이 놓여 있다. 흥국사에는 대웅전이 없어 이 약사전이 주불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약사전 편액이 영조가 남긴 친필이란다. 약사전 뒤쪽 언덕에는 북한산을 바라볼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다. 그 가운데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멀리 바라다본다. 흥국사 지붕들 저 너머로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지척으로 다가온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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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꽃샘추위가 유난한 것 같다. 4월도 깊이 들어왔는데 난데없는 함박눈까지 내려 계절이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꽃샘추위라도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 남쪽에서는 벌써 벚꽃축제도 끝났다 한다. 이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곳에 따라 벚꽃이 절정에 다다를 것 같다. 때늦은 꽃샘추위를 이겨낸 일산 호수공원의 벚꽃들도 이제 그 자태를 마음껏 뽐낼 것이다.

 

 

1992년에 준공된 일산신도시는 ‘예술과 문화시설이 완비된 전원도시’ ‘자급자족의 기능을 갖춘 수도권 서부의 중심도시’ ‘남북통일의 전진기지’ 등의 목적을 가지고 조성됐다. 도시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조성된 호수공원은 일산신도시 계획의 주된 도시계획적 요소이다. 스위스 남부 제네바에 있는 레만 호수를 모델로 구상된 이 호수공원은 총면적 103만4000㎡, 호수면적 30만㎡로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이다. 호숫가로 산책로와 자전거로가 이어지고 다양한 수종의 야생화와 수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호수의 자연미를 담뿍 담고 있다. 잔디광장, 수변광장 등의 다양한 광장과 인공섬, 정자와 같은 조경요소들 외에도 음악에 맞추어 다양한 분수쇼를 연출하는 노래하는 분수대는 호수공원의 멋진 랜드마크가 된다. 고양꽃전시관, 고양 600년 기념전시관, 고양 신한류홍보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은 연중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시 관련 문화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꽃을 주제로 한 국제꽃박람회, 장미축제, 가을꽃축제들과 함께 LED 조명을 이용한 겨울의 호수꽃빛축제에 이르기까지 꽃과 관련된 축제가 연중 이어진다. 이제 이 벚꽃이 지고 나면 호수공원의 대표적인 꽃축제인 고양국제꽃박람회가 우리를 맞는다. 매년 봄, 호수교에서 장미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펼쳐지는 국제꽃박람회는 일산 호수공원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는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이하는 고양국제꽃박람회가 이달 27일부터 17일간 이어진단다. 올해는 어떤 꽃들로 우리를 유혹할지 궁금해진다. 노래하는 분수의 힘찬 물줄기는 벌써 여름을 재촉하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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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행주대교IC에서 바깥 차선으로 서울 쪽을 향하면 곧바로 행주산성 방향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자유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일대는 여기저기 여러 국숫집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국수로 특화된 지역임을 직감케 한다. 호기심 겸 한 국숫집에서 시장기를 해결한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가득 담겨오는 잔치국수는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이다. 식사 후 다시 차를 몰아 반대편 능선 쪽에 있는 행주산성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정문을 향한다.

 

 

대첩문이라 쓰여 있는 정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나지막한 언덕길로 행주산성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권율 장군 동상, 충장사, 행주대첩 기념관, 덕양정, 행주대첩비, 충의정 등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1.6㎞ 정도란다. 운동 겸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정상에 있는 덕양정에서는 한강과 서울, 고양시와 김포시까지 드넓은 풍광이 펼쳐진다. 둘레길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장소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권율 장군 동상 뒤쪽에 위치한 충장사가 나를 이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우측으로 폭이 좁은 진입로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 길 위에는 자그마한 홍살문이 있어 이 지역이 신성한 곳임을 암시한다. ‘충성된 장군을 모신 사당’이란 뜻의 충장사는 언덕을 이용하여 입구의 삼문과 그 안쪽에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산도대첩, 진주성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루었던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이다. 원래는 행주 나루터 안마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그 후 1970년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현 위치에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다시 지어졌다.

 

행주대첩의 원년 양력 날짜인 매년 3월14일에는 대첩을 기념하는 제례행사가 이 충장사에서 열린다고 한다. 올해로 425주년을 맞이한 지난 3월14일에도 고양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직접 참여하는 제례가 있었다고 한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기와를 제외한 구조부분이 모두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비록 진정한 전통건축이라 할 수는 없지만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모든 부재의 형상과 단청 덕에 전통건축의 맛이 제법 풍겨난다. 더구나 삼문과 사당, 그리고 뒤쪽 능선에 위치한 행주대첩 기념관이 주변 수목과 어우러져 멋진 구도를 만들어낸다. 이 멋진 풍광은 큰길에서 이곳까지 애써 찾아 들어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별선물이리라.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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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에서 파주 헤이리로 접어드는 성동IC를 빠져 나온다.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자마자 곧바로 또다시 좌회전. 헤이리 마을 입구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파주 맛고을 음식문화거리’ 이정표가 나를 안내한다. 이정표처럼 이 길로 가면 다양한 먹거리 장터가 펼쳐질 것 같다. 역시나 나지막한 언덕길을 넘어 이어지는 도로 좌우로 다양한 음식점들이 시장기 도는 방문객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문득 앞에는 ‘프로방스 마을 주차장’이라 쓰여있는 커다란 건물이 길을 막아선다. 이 주차장 뒤쪽으로 한 해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는 파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프로방스’가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초입 도로변에는 마늘빵으로 유명한 류재은베이커리 본점이 자리 잡고 있어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방스는 1996년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시작해 점차로 영역이 확대되어 이제는 40여개의 건물들이 들어선 유럽형 마을로 발전하였다. 다양한 파스텔 컬러의 벽체 위로 붉은 오지기와 지붕을 한 건물들이 나지막한 구릉 위에 자연스레 배치되어 있다. 건물들은 다양한 카페, 레스토랑, 인테리어 소품, 허브용품, 의류매장, 베이커리 등의 상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건물은 독립된 운영으로 소유주들의 독창적인 마케팅이 발휘되면서도 마을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이 마을에서 사용되는 그릇류를 직접 제작하는 도자기 공방도 함께 있어 마치 마을 전체가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마을의 느낌이다.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한 언덕길과 계단, 조그만 광장을 둘러싸고 건물들은 서로 다른 색채의 얼굴로 화사함을 선사한다. 이름 그대로 프랑스 남부의 조그만 시골마을에 온 듯하다. 단층짜리 건물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조그만 골목은 마치 체코 프라하의 비트 성당 뒤쪽에 있는 황금소로가 연상된다. 이 건물들 어딘가에 카프카가 집필하던 집이 있을 것 같다. 예쁜 정원과 동화 같은 오브제들, 벽체의 화사한 색채에 둘러싸여 동화마을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 골목 저 골목 풍겨나오는 이국적 정취 속에 마을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든다. 날이 따뜻해지면 저 광장 한 귀퉁이에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유혹하는 거리의 악사도 나타날 것 같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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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법원리 사거리를 지나 시가지 서쪽 끝지점 우측으로 2차선 도로가 이어진다.

이 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언덕길을 넘어가면 우측에 ‘경기도 율곡교육연수원’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율곡이란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연수원 본관과 정문, 경비실 모든 구조물에 한옥지붕이 얹혀 전통의 이미지가 풍겨 나온다. 이 연수원 아래쪽으로 너른 주차장이 있어 이곳이 율곡 이이(1536~1584)의 유적지임을 알려준다.

 

 

유적지의 정문인 삼문을 지나니 중앙의 너른 잔디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잔디밭 외곽에는 율곡을 기념하는 공간들과 그 일가의 묘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율곡이나 신사임당을 생각하면 강릉 오죽헌을 떠올리게 되는데 정작 율곡의 본가가 서울 근교인 파주였다니?

 

율곡이 태어난 곳은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릉이었지만 여섯 살이 되던 해에 본가인 파주에 올라와서 성장을 하였으니 파주야말로 그의 정신적 거점 공간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잔디밭 우측에 율곡과 신사임당의 업적이 전시되어 있는 율곡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전면에는 자운산 능선을 따라 율곡 일가의 묘역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좌측에는 율곡의 사후에 건립된 자운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자운서원은 효종 때 ‘자운(紫雲)’으로 사액을 받아 조선시대 이 지역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으나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게 된다. 그 후 1970년대에 국가의 지원과 유림의 모금으로 서원을 비롯한 주변공간이 모두 정비되어 지금과 같은 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자운문이라 쓰여 있는 외삼문을 들어서면 좌우로 기숙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그 뒤로 강당인 강인당(講仁堂)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인당 뒤 내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가장 뒤쪽에 율곡의 사당인 문성사(文成祠)가 놓여 있어 자운서원 전체는 강당이 앞에 있고 사당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墓)의 배치를 하고 있다. 강인당 앞 양쪽에 서 있는 두 그루 느티나무는 수령이 400년을 넘긴 보호수로 자운서원의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서원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담아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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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에서 북한산 외곽을 돌아 고양시로 이어지는 39번 국도로 겨울길을 달린다. 장흥을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용미리로 이어지는 78번 국지도가 이어진다. 이 국지도에서 다시 갈라지는 367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 달리면 우측으로 일주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령산 보광사’라고 씌어 있어 국지도에 바로 붙어 있는 사찰이 있음을 알려준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조금 올라가면 우측으로 넓은 주차장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부터 산사까지는 걸어 올라가라는 뜻일 게다. 걸어 올라가야 할 시작점에는 ‘해탈문’이라고 쓰인 또 하나의 자그마한 일주문이 보인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사찰의 경내임을 알려준다. 보광사의 주산인 고령산(622m)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어서 사찰의 진입로는 등산로로도 사용되고 있다. 나지막한 경사로를 따라 잠시 오르면 산사의 너른 앞마당에 다다른다. 마당 너머로 요사채와 범종각, 대웅보전, 지장전의 한옥지붕이 겹겹이 겹쳐져 고령산의 산줄기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선보인다.

 

보광사는 통일신라시대(894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어서 천년고찰로 불린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1622년(광해군 4년)에 다시 복원하였고 한국전쟁 때 일부 전각들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꾸준히 복원하고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심이 되는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 1740년(영조 16년)에 중건되었다. 겹처마의 팔작지붕, 다포식의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대웅전 우측 위에는 어실각(御室閣)이라는 전각 하나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무수리로 궁궐에 들어와 내명부 정1품인 숙빈까지 올라간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전각 앞에는 영조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영조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사찰에 대해 친절히 소개해 주시는 스님의 말씀에서 천년고찰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공양을 꼭 하고 가라는 스님의 말씀에 생각지 않았던 사찰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덤으로 받았다. 봉사하러 모여든 여신도들의 화기애애한 대화 속에 겨울의 산사는 포근하기만 하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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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연초.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쌀쌀한 겨울바람을 가르며 나의 운전대는 파주 임진강가에 위치한 반구정으로 향한다. 임진각 직전에 위치한 당동IC를 빠져나와 2차선 도로로 1㎞ 정도를 더 가면 ‘방촌 황희선생유적지’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널찍한 주차장이 나를 반긴다. 고즈넉한 한옥담장과 한옥으로 지어진 매표소는 이곳이 잘 정돈된 유적지임을 암시한다. 이곳이 고려말에서 조선조 세종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나라의 살림을 맡았던 청백리 황희 정승(1363~1452)이 말년을 보냈던 데이다. 티케팅을 하고 한옥대문을 들어서면 널따란 정원이 오른쪽에는 방촌기념관, 그리고 왼쪽에는 영당(影堂) 영역으로 나누어 놓은 모습이 보인다. 기념관에서 정승의 일대기를 살펴본 후 영당 쪽을 바라본다. 한바탕 큰 눈이 내린 후라 길다란 담장 중앙에 위치한 삼문 뒤로 몇 채의 한옥들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멋진 설경을 연출한다.

 

 

삼문인 청정문을 들어서면 제사를 준비하는 사직재(舍直齋)와 그 우측에 정승의 고손인 월헌 황팽헌(1472~1535)의 신주를 모셔놓은 월헌사(月軒祠)가 위치하고 있다. 월헌사 옆으로 정승의 영당이 있는데 그 주위에 또 다른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담장 중앙에 솟을삼문이 있어 이곳이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임을 암시한다. 솟을삼문을 들어서서 맛배지붕에 초익공 형식으로 된 영당의 아늑함에 잠시 추위를 잊어본다. 영당 우측에 있는 팔작지붕의 경모재(景慕齋)는 세월의 때가 많이 배어 있어 고즈넉함이 더하다. 끝 지점에는 어딘가 바라보고 있는 정승의 동상이 놓여 있다. 정승은 그 앞쪽 나지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2개의 정자에 시선이 맞추어져 있다. 앞쪽에 놓여 있는 정자가 앙지대(仰止臺)인데 이는 후손들이 정승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뒤쪽에 있는 정자가 반구정(伴鷗亭)으로 이 정자가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곳이라 한다. 반구정 앞쪽으로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이 겨울의 추위를 짐작하게 한다. 발밑으로 강을 따라 길게 드리워진 철책선은 이곳이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북쪽의 끝 지점임을 알려준다. 저 멀리 북쪽을 이어주는 임진강 철교가 아스라이 보인다. 아마도 정승이 반구정을 통하여 북쪽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마음은 남북 경계 없이 자유로이 넘나드는 갈매기와 같은 평화로움을 후손들이 누렸으면 하는 것이 아닐까?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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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전철의 종착지 소요산역 두 정거장 전에 위치한 보산역에 가면 이색적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린다. 고가의 전철역사 옆으로 길게 드리워진 저층 상가들의 모습에서 이국적인 풍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형형색색의 현란한 건물들과 외국어 일색의 간판들은 외국의 한 소도시 모습이다. 교각 밑은 플리마켓 등 다양한 거리축제가 가능한 산뜻한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1980~1990년대 음식점, 클럽 등 많은 점포들이 길 건너에 주둔하던 미2사단 2만여명의 미군들을 상대로 크게 성업했던 곳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군들이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이곳 상권은 급속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동두천시는 침체된 상권을 살리고자 이곳을 외국인 관광특구로 지정하였다. 건물의 외관을 현란한 그라피티로 덧입히고 다양한 디자인의 외국 간판으로 거리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빈 상점들을 하나둘 리모델링하여 다양한 공예공방들을 유치하는 디자인아트빌리지도 추진 중이다. 또한 이 보산동 골목은 한국의 록밴드가 시작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신중현, 조용필 같은 많은 뮤지션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클럽 하나를 리모델링해 지난해 말 ‘두드림뮤직센터’를 개관했다. 한국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관과 공연장을 조성한 것이다. 철로 교각 밑 광장에는 주말마다 플리마켓이 열리고 10월에는 핼러윈거리축제가 펼쳐지는 등 다양한 거리축제가 이어진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는 외국인들이 직접 운영하고 요리를 하는 외국음식점도 많이 눈에 띈다. 눈발이 흩날리는 어느 날 야외무대가 바라보이는 광장에 면한 조그만 스페인 음식점에 들어갔다. 벌써 몇몇 외국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자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스페인 주인장이 직접 만들어 주는 음식을 접하니 오래전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하던 때가 떠오른다. 전철역 앞이라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아지트가 많이 조성된다면 예술인들과 교감하려는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이곳으로 옮겨지리라. 올가을에는 다시 이 자리에 와 창밖의 무대에서 펼쳐질 록밴드의 선율을 들으며 색다른 메뉴를 골라보고 싶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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