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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북단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는 명성산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에 에워싸여 ‘산속의 우물과 같은 맑은 호수’라는 뜻의 산정호수(山井湖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이 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명성산은 후고구려를 건립한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이 산에 은거지를 만들어 생활하다 피살되었던 산으로 유명하다. 한때의 영화를 누리던 왕에서 반란군에게 쫓겨 숨어 지내는 처지가 된 궁예는 이 산에서 한동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울음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명성산(鳴聲山·923m)은 ‘울음산’의 한자 표기이다.

 

호수 옆에 위치한 망무봉(446m)과 망봉산(384m)은 궁예가 왕건 군사의 동태를 망보았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호수 근처에 있는 ‘파주골’의 본래 이름은 ‘패주골’인데 이는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도망쳤던 골짜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산정호수 주변에는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산정호수는 김일성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6·25 이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북한 땅이었다. 김일성은 구 유고 티토 대통령의 초청으로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에 위치한 티토의 별장에 머무른 적이 있다. 티토의 별장은 알프스에 둘러싸인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다. 김일성은 이 티토의 별장에 감동하여 블레드 호수와 비슷한 풍광을 지닌 산정호수에 자신의 별장을 건립하였다. 별장터만 남아 있는 위치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뒤쪽의 명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림은 그 위치에서 바라본 산정호수의 모습이다. 그는 산정호수가 아름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이 호수를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구체화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여겼다 한다. 산정호수의 모양이 우리나라 지도를 좌우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별장터가 한반도의 최남단 부산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의 별장 건설을 부산까지 점령하려던 그의 야망을 실현하는 상징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산정호수는 수려한 풍광과 함께 곳곳마다 역사의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월에 펼쳐지는 ‘명성산 억새꽃 축제’ 때에는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가을을 느껴보고 싶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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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43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도로는 산정호수 진입로 부근에서 크게 왼쪽으로 휘어진다. 휘어진 이 도로의 첫 교차로에서 왼쪽에 있는 2차선 도로로 핸들을 튼다. 고갯길을 넘어 잠시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리다 보면 차는 곧 넓은 주차장에 다다른다.

 

주차를 하고 표지판을 따라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우렁찬 폭포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멋진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둘기낭’이다.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이루어진 한탄강은 크고 작은 하식동과 주상절리, 판상절리 등으로 곳곳마다 절경을 만들어낸다.

 

비둘기낭은 그 절경 중 하나로 현무암 지질구조가 만들어낸 폭포와 폭포 뒤쪽에 반달모양으로 움푹 파인 동굴을 지칭한다. 매년 겨울이면 수백마리의 산비둘기가 이 동굴에 서식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폭포 아래에는 에메랄드 빛깔의 영롱한 소(沼)가 형성되어 뒤쪽의 동굴과 어우러져 멋진 비경을 만들어낸다. 동굴을 뒤덮고 있는 천장과 주변의 바위들은 주상절리의 단편들로 군집되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러한 아름다움으로 이곳은 한탄강이 만들어 낸 8경 가운데 제6경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큰비가 내린 후면 풍부한 수량으로 만들어지는 폭포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선덕여왕> <추노> <늑대소년> <괜찮아 사랑이야> 등과 같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 아름다운 폭포를 배경으로 하는 인기 촬영지이기도 하다.

 

포천시에서는 비둘기낭을 비롯하여 한탄강이 만들어내는 절경들을 배경으로 한 관광지개발사업이 한창이다. 한탄강 둘레길 조성, 생태공원, 테마파크 등 수도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개발사업이 대부분 2019년이면 완공이 된다. 한탄강의 비경에 흠뻑 심취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최근 개통된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비둘기낭까지 1시간이면 도착하는 근거리가 되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비둘기낭 폭포소리를 들으러 고속도로에 몸을 실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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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7개월간의 서울 여정을 마치고 이제 시선을 경기권역으로 옮겨 본다. 경기권역의 첫 대상지는 포천이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내가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어서.

포천을 시작으로 경기북부에서 경기남부로 향하는 드로잉 여행을 새로이 시작해 본다.

그 첫 장소로 한탄강 줄기에 위치한 고석정(孤石亭)을 소개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철원에 속해 있으나 포천의 최북단 관인면 냉정리와 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해서 포천편에서 소개하는 것이다. 한탄강(漢灘江)은 강원도 평강군에 있는 추가령 구조곡이라는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철원과 포천을 거쳐 연천을 지나 임진강으로 합류되는 길이 136㎞에 이르는 강이다. 화산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려 주변 지형을 깎아 형성된 이 강은 강 좌우로 수직절벽과 협곡을 형성하면서 수많은 절경을 만들어낸다. 고석정은 한탄강이 낳은 절경 중 하나로 강 중앙에 홀로 우뚝 솟아 있는 20m 높이의 고석(孤石) 옆에 축조된 정자와 바위 주변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이다.

 

고석정은 조선시대 임꺽정이 활동하고 은거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임꺽정은 양주의 백정 출신으로 나라 일에 마음을 두었으나 신분 때문에 뜻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에 분개한 그는 대적당(大賊黨)을 조직하여 의적활동을 펼친다. 관가나 토호·양반집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조정으로 운반되는 진상품을 약탈하여 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활동영역은 황해도뿐 아니라 강원도와 개성, 경기도 등지로 확대되었다. 임꺽정은 관군의 토벌에 거세게 저항하면서 적어도 3년 이상을 버텨내었다.

 

고석정 중간쯤엔 임꺽정이 몸을 숨기기 위해 드나들었다는 구멍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한 사람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인데, 그 안에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관군에게 쫓기던 임꺽정은 피할 재간이 없게 되면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신하여 강물 속으로 몸을 숨기곤 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고장 사람들은 고석정의 바위를 꺽정바위로 부른다 하니 임꺽정과 고석정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보다. 이 지역은 물살이 빨라 여름이면 래프팅 장소로도 유명하다. 요즘 같은 폭염에는 래프팅을 하면서 강 좌우의 주상절리와 기암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광에 젖어 보는 것도 현명한 생각이리라.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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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뀌었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 때문이다. 지난 4월2일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으로 롯데월드타워가 강남 스카이라인의 중심에 우뚝 섰다. 2010년에 착공하여 6년 만에 완공된 123층, 높이 555m로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이다.

 

아래쪽은 퉁퉁하다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형태로 한국의 전통 도자기와 붓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높이에 있어서나 형태에 있어서 서울 어디에서든 쉽게 눈에 띄는 서울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저층부 포디엄에는 쇼핑몰, 콘서트홀, 영화관 등이 구성되어 있고 중층부에는 오피스와 주거시설, 특급 호텔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층에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전망대가 위치해 있다. 특히 저층부에는 7층에 미술관과 8~10층에 2000석 규모의 클래식 전문 연주홀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다른 대규모 복합시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전문적인 문화예술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콘서트홀에는 5000여개의 파이프를 가진 파이프 오르간이 무대 뒤쪽을 장식하고 있다.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아레나(arena) 형식으로 청중들이 사방에서 무대를 관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음향설계에 힘입어 벌써부터 많은 음악인들의 꿈의 무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상층의 전망대는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다. 더블 데크(double deck)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지 1분. 내부에서 보여주는 건물관련 영상에 몰입해 있을 즈음 몸은 어느새 높이 500m의 전망대에 다다른다. 사방 끝없이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은 전망대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는 시원한 청량제이리라. 아래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데크의 투명바닥 체험은 이곳을 찾은 이들의 오랜 무용담이 될 듯하다.

 

1년 반에 걸친 서울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에 대한 소개를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다음 원고부터는 경기도 일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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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를 나와 이태원 방향을 바라보면 도로를 가로지르는 아치 조형물이 나를 맞이한다. 아치 옆으로 나 있는 우측의 사잇길로 방향을 틀어본다. 자연스레 형성된 나지막한 경사로를 따라가면 잠시 후 리움에 다다른다. 주출입구 우측으로 목재 데크의 넓은 열린 공간이 눈길을 끈다.     

 

중앙에 위치한 인도 출신의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작품 ‘큰 나무와 눈’은 방문객의 발길을 열린 공간으로 안내한다. 자신이 애독하던 릴케의 시집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하였다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자신들의 형상에 다른 구체의 형상이 반사되어 수많은 구체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는 모습이다.

 

2004년에 개관한 리움은 설립자의 성인 Lee와 미술관을 뜻하는 영어의 어미 -um을 합성한 용어란다. 이 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작품들이지만 세계적인 건축가 3인의 건축 작품이 한 장소에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그들이다.

 

중앙에 있는 라운드 형태의 벽돌조 건물이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마리오 보타는 벽돌이나 석재를 외장재로 주로 사용한다. 강남대로에 있는 교보타워나 노원역에 있는 교보생명 빌딩이 그의 작품이다. 리움에서는 직육면체와 역원추형이 결합한 형태로 디자인하였다. 역원추형은 도자기 등 고미술품 전시공간이 연상되는 도자기 형상의 이미지다.

 

오른쪽의 현대미술관은 장 누벨의 작품이다. 두꺼운 판을 여러 개의 큐빅들이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검은색의 녹슨 스테인리스와 유리의 마감은 뒤쪽 마리오 보타의 연붉은 테라코타의 색과 질감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큐빅의 형상은 실내공간들을 여러 개의 작은 공간들로 나누어 놓는다. 대부분 추상작품들인 실내 작품들은 유리창 너머의 넝쿨 식물이나 나무 등의 사실적인 자연과 대비되면서 멋진 대조를 이룬다.

 

왼쪽 길가에 위치한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는 렘 쿨하스의 작품이다. 실내 중앙에 모서리를 경사지게 깎아 올린 블랙 콘크리트 매스는 강한 역동성을 연출한다.

 

리움은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3인의 건축언어를 동시에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곳이어서 미술관을 찾는 방문객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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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앞 도로에는 2004년 완공된 멋진 아쿠아 육교가 있다.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란 프랑스 건축가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 예술원 건축대상을 수상한 후 한국의 고속철도 설계에 참여하면서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에 정착하면서 이 아쿠아 육교를 비롯하여 대명비발디파크 소노펠리체, 서래마을 프랑스 학교, 여수세계박람회 프랑스관 등 한국에서도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현재 주한 프랑스상공회의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 육교를 디자인하기에 앞서 2002년 완공된 고속터미널 후면에 위치한 ‘센트럴 포인트 육교’를 디자인하였다.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타워를 이용하여 케이블로 다리를 들어올리는 사장교(斜張橋)였다. 독특한 형태뿐 아니라 밤이 되면 주변의 교통상황에 따라 조명을 달리하는 디자인으로 육교를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 육교가 크게 인기를 얻게 되자 예술의전당 앞 육교 디자인도 맡게 된다. 그는 예술의전당 앞 남부순환도로에 커다란 원반 모양의 구조체를 만들고 여기에서도 건너편 계단에 이르기까지 기둥 없이 케이블을 이용한 사장교를 설계하였다. 큰 원반의 아래쪽에는 작은 원형의 통행로가 마련되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큰 원반에서는 겨울을 제외한 3계절에는 시원한 폭포가 유리면을 타고 쏟아져 내려온다. 야간에는 멋진 조명으로 육교의 예술미가 극적으로 표현된다. 예산이 일반 육교보다 많이 들기는 하였지만 그 예술적 가치로 서초구의 명물이 되었고 국내에서는 육교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귀중한 선례가 되었다. 이후 국내의 많은 곳에서 독특한 미를 과시하는 육교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나는데 이 아쿠아 육교의 역할이 컸음은 물론이다. 육교를 비롯한 가로 시설물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로서의 건축가의 역할이 세인들에게 크게 알려진 사례이기도 하다.

 

날이 점차로 더위의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원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이 아쿠아 육교 유리 원판 밑으로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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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안국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내려오면 왼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운현궁 담장을 만나게 된다. 흥선대원군의 집이었던 이 운현궁 뒤편에는 한옥과는 대별되는 밝은 색의 서양 르네상스풍의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운현궁 양관(洋館·양옥집)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최근 TV 드라마 <도깨비>의 주요 무대로 활용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드라마에서 공유와 이동욱이 함께 살고 있는 도깨비의 집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운현궁 양관이니 운현궁에서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운현궁 안마당에서 노락당 뒤쪽을 바라보면 측면 상부만 나무에 가려진 채 살짝 보이는 정도이다. 게다가 운현궁 뒤쪽의 후정은 높은 담으로 막혀 있어서 운현궁에서 양관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이 건물을 만나기 위해서는 운현궁 아래쪽 덕성여대 운니동 캠퍼스의 정문을 이용해야만 한다.

 

 

운현궁 양관은 1912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의 왕족을 회유하고 감시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에게 지어준 것이다. 아들이 없었던 이준용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차남 이우를 양자로 삼는다. 이후 이준용이 죽자 양자인 이우가 양관을 물려받게 되고 이우는 이 양관에 살면서 일본군 장교로 태평양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일제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며 조선의 왕족을 군에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11세에 볼모가 된 이우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사망 직전 일본군 고위 장교의 위치까지 올랐다. 이 건물은 1946년경 김구 선생이 2층 사무실을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다. 해방 이후에 생활이 어려워진 이우의 후손은 1948년 이 건물을 덕성학원에 팔게 된다. 운현궁이 아닌 덕성여대를 통해야 이 건물을 볼 수 있게 된 이유이다. 덕성여대에서는 이 양관을 법인 사무국으로 사용해 오고 있었는데 요즘은 1층 실내를 교육 목적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건물 주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포함한 특수대학원이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배너의 글귀는 애써 이 건물을 찾아온 방문객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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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 4번 출구를 나와 낙원상가 방향으로 발길을 내딛는다. 도로에 면해 기와지붕이 얹힌 담장이 도로를 따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운현궁 기획전시실의 뒷면이기도 한 이 담장은 정문인 솟을대문으로 나를 인도한다.

 

운현궁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운현(雲峴)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천문을 맡아보던 관청인 서운관(書雲觀) 앞에 있는 고개(峴)라는 의미에서 따 왔다고 한다.

 

고종이 임금에 오르자 대원군은 자신의 집을 크게 확장하면서 궁이라 부르게 하였고 이후 이 집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다. 운현궁은 원래 지금의 교동초등학교와 삼환기업, 그리고 일본대사관까지 달하는 큰 규모였으나 권불십년 대원군의 몰락과 함께 점차 지금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현재는 입구의 앞마당과 대원군을 지키던 경비들의 처소인 수직사와 노락당, 노안당 그리고 뒤쪽의 이로당만 남아 있다.

 

매표소를 들어서면 남북으로 길다란 앞마당이 놓여 있다. 방금 무슨 공연이 있었는지 무대세트 제거작업이 한창이다. 마당을 지나 또 하나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을 만난다. 높다란 기단 위에 앉힌 사랑채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세도가의 한옥 모습을 면면히 살펴볼 수가 있다.

 

노안당 안쪽의 중문은 뒤쪽의 노락당(老樂堂)으로 연결된다. 안채에 해당하는 노락당은 고종이 민비와 가례를 치렀던 곳이고 이후 고종이 운현궁을 들를 때 거처로 사용하였다. 안채가 고종의 처소로 사용되다보니 또 하나의 안채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락당 뒤쪽으로 실질적인 안채 역할을 하는 이로당(二老堂)이 지어졌다.

 

남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ㅁ자 형태로 되어 있는 이로당은 복도를 통하여 노락당과 이어진다. 이러한 복도는 일반 사대부 가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궁궐의 복도를 사대부 가옥에 적용한 것이니 당대의 흥선대원군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중심가 큰 도로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세도가의 위풍당당한 한옥 저택의 모습, 서울의 또 한가지 자랑거리가 아닐까?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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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신문에 게재해 왔던 서울의 원고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신문에 싣지는 못하였지만 책의 분량을 보충하기 위해 얼마간 더 작성해 둔 원고도 있다. 대학 캠퍼스는 앞서 게재하였던 원고들로 마감하려 하였다. 그런데 지난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화제가 된 대학이 있어 다시금 책 원고에서 끄집어내게 되었다.

경희대가 바로 그 대학이다. 문재인 대통령(법학 72학번)과 김정숙 여사(성악 74학번)를 동시에 배출한 대학이어서 요즘 이 대학은 큰 경사를 맞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는 벚꽃이 만발할 때면 벚꽃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그림은 벚꽃이 한창일 때의 캠퍼스 모습이다. 벚꽃이 만발한 캠퍼스 중앙의 본관과 그 옆의 중앙도서관, 그리고 뒤쪽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평화의 전당이 한데 어울려 멋진 4월의 풍광을 만들어낸다. 캠퍼스 중앙에 있는 본관은 장대한 스케일의 코린트 양식의 열주 위로 삼각형의 페디먼트(박공 모양)를 하고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고전주의의 엄격함을 상아탑에 적용하여 올바르게 교육하고자 하는 정신이 노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도서관과 언덕 위에 있는 평화의 전당은 첨두아치로 상징되는 네오고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캠퍼스의 주요 건물에 고딕 양식을 적용하여 중세시대의 도덕적이고 순수한 정신을 학문과 교육으로 이어보려는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고딕성당의 모양을 한 평화의 전당은 1999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개관한 4500석의 대규모 공연장이다. ‘문화 세계의 창조’라는 경희대의 창학이념은 경희대의 랜드마크이자 사립대학으로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연장을 탄생시켰다. 이들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을 한 많은 건물들이 서로 어울려 다양하면서도 통일감을 이루는 멋진 캠퍼스를 만들어낸다.

 

이런 멋진 대학에서 배출된 대통령 내외이니만큼 그동안 쌓인 국민 갈등과 산적한 대내외 문제들을 잘 풀어내 대한민국 전체에 멋진 벚꽃 풍경을 만들어내어 주길 기대한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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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정동길과 덕수궁길, 서소문길이 만나는 로터리 모퉁이에 세월의 때가 묻은 아담한 교회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중 “언덕길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라는 가사에서 나오는 교회당이 바로 이 교회이다. 그 이름 정동교회.

선교사 아펜젤러는 1885년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 사학인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 이 정동교회도 창립하였다. 따라서 배재학당과 정동교회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2년 후인 1887년에는 첨두아치가 두드러진 고딕양식의 벧엘 예배당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교회는 나에게는 뜻깊은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이다. 그 옆에 있었던 배재학당을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은 명일동으로 배재학당의 캠퍼스가 이전했지만 나의 재학시절에는 이곳 정동에 캠퍼스가 있었다.

 

 

기독교 학교여서 배재학당의 학생들은 매주 한 번씩 학년 단위로 이 벧엘 예배당으로 이동하여 채플을 보았다. 한 번은 채플시간에 합창반 친구들이 특송으로 무반주 남성복사중창곡을 연주하였다. 이 연주에 크게 감동을 받은 나는 이후로 음악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합창반에도 들어가게 되고 개인적으로 꾸준히 연습하여 채플시간에 많은 친구들 앞에서 독창할 기회도 갖게 되었다. 나의 전공을 하면서도 음악석사를 2개나 따는 열성을 보일 수 있었던 기반도 돌이켜보면 이 예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동길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고즈넉한 이 예배당 앞쪽에는 로터리가 만들어지고 차로를 줄여 넓은 보행로가 조성되었다. 그 덕에 이곳은 보행자들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된 지 오래다. 요즘에는 수시로 교회당 안뜰이나 그 옆 덕수궁 돌담길에서 거리 음악회가 열려서 멋진 도심의 문화광장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또한 얼마 전에는 잘 아는 소프라노 한 분이 이 교회에서 연주회를 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서 감회가 새로웠다. 언젠가 나도 한번 정동교회 안이나 마당에서 연주를 해보고 싶다. 옛날 고등학교 시절 채플시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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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삼거리 왼쪽 길모퉁이에 낯선 한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없었던 건물인데 지난해 9월 ‘서울돈화문국악당’이라는 국악 전문 공연장이 한옥의 모습으로 새로 생겨났기 때문이다. 2011년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의 안이다.

 

 

출입구를 들어서면 잔디로 덮인 아담한 크기의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잔디마당을 단층짜리 한옥이 빙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행랑채 형식으로 잔디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한옥에는 카페가 자리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선사한다. 잔디마당에서 야외공연이 열리면 마당 쪽의 접이문이 좌우로 펼쳐져 카페 공간은 멋진 객석으로 변신한다. 140석 규모의 국악 전문 공연장은 이 잔디마당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어느 자리에서도 편안히 무대를 관조할 수 있도록 객석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객석 내부는 한옥 벽체와 한옥 여닫이창으로 인테리어를 하여 지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한옥의 정감이 공연장 내부로 이어진다. 공연장이라는 대형 공간을 지하화함에 따라 지상에 위치한 건물들은 크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건물의 모습은 잔디마당과 더불어 소박한 우리 전통 건축의 맛이 배어 나온다.

 

과거 돈화문 앞 거리는 조선성악회와 국악사양성소를 비롯한 많은 국악 명인들이 거주했던 곳이다. 현재도 국악학원과 한복집, 국악기점들이 다수 있어 이 지역에 대한 과거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서울시에서는 2014년 남산과 북촌, 돈화문로를 연결하는 국악벨트를 추진하게 된다. 특히 돈화문에서 종로3가를 연결하는 도로를 ‘국악로’로 지정하여 전통문화의 거리를 조성한단다. 그 첫 사업으로 창덕궁 앞에 있던 주유소를 매입하여 이 부지 위에 지금의 서울돈화문국악당을 마련한 것이다. 그 주위로 민요박물관과 국악박물관의 건립도 추진된다 하니 앞으로 돈화문 앞 국악로가 우리의 전통미를 만끽할 수 있는 멋진 문화의 거리로 탄생되기를 기대해 본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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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에서 다시 홍은사거리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상명대 앞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도로 아래 계곡 쪽에서 불쑥 솟아오른 한옥 지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으로 내려가 차를 대고 홍제천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예전에는 멋진 계곡이었을 이 홍제천 위를 가로지르는 5개의 아치로 구성된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다리와 곧바로 연결된 우진각 지붕을 한 성문이 앞서 궁금해했던 바로 그 한옥 지붕의 건물이다. 조선시대 서울의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해 세워졌던 성문인 홍지문(弘智門)이다. 성문 옆으로 계곡이 맞닿아 있으니 다리 역할을 하는 성벽이 필요했으리라.

 

다리 아래는 5개의 아치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렇게 5개의 아치가 있는 다리라 하여 오간수문(五間水門)으로 불린다. 다리 위에는 성벽이었음을 알려주는 성가퀴(성벽 위에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낮게 덧쌓은 담)가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성벽은 다리 건너 우측 상명대학교 경사지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이 성벽이 탕춘대성(蕩春臺城)이다. 탕춘대성은 한양도성과 외성인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산성이다. 한양도성의 북소문에 해당하는 창의문(자하문)에서 시작하여 북한산 서남쪽 비봉까지 연결되는 약 5㎞의 구간이다.

 

탕춘대성의 명칭은 세검정에서 동쪽 100여m 떨어진 산봉우리(현재 세검정초등학교)에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가 있었는데, 그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결국 홍지문은 이 탕춘대성을 통과하는 문으로 한양의 북쪽에 있다 하여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다. 현재 도로에 의해 성벽의 한쪽이 잘려져 있는 비대칭의 형상을 하고 있어 오히려 미학적으로는 독특한 미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추진과 함께 이 탕춘대성도 확장 등재될 가능성이 높아 정비가 추진된다고 하니 머잖아 말끔히 단장된 탕춘대성의 새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은 홍제천 아래쪽에서 홍지문과 오간수문을 올려다보며 그린 것이다. 오간수문 위쪽으로 상명대학교 캠퍼스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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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홍은사거리에서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경사로를 오르다 보면 왼쪽 능선으로 상명대학교 캠퍼스가 올려다보인다. 상명대학교 앞 삼거리를 지나 위쪽으로 200m가량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단아한 정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 일대의 지명을 짓게 해 준 ‘세검정’이란 정자다.

 

홍제천이 내려오는 길목에 위치한 정(丁)자형 3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세검정은 예로부터 멋진 풍광으로 이름이 높았던 곳이다. 지금도 홍제천 좌우로 많은 연립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해도 세검정 아래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여전히 멋진 풍광이 뿜어져 나온다. 세검정(洗劍亭)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인조반정 때 이귀, 김유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경치가 빼어났기에 왕과 사대부, 여염집 자제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노닐며 시를 짓고 바위에 글씨 연습을 하였다. 계곡 위쪽에서 바위 사이를 굽이치는 물결과 쏟아지는 폭포는 많은 선비들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유혹하여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조리게 만들었다. 세검정의 가장 멋진 구경거리가 소나기가 쏟아질 때의 폭포 구경이었다 하니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정자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광은 예사롭지 않았다 할 것이다.

 

운이 좋아서일까? 지난해 가을, 내가 이곳을 찾았던 그 날에도 가을치고는 제법 큰 비가 내렸다. 상류인 평창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는 홍제천으로 이어지면서 세검정에 이르러서는 멋진 풍광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정자 아래쪽 마당바위 앞쪽에 놓여진 홍제천을 가로지르는 보를 넘어선 세찬 물길은 세검정 옆을 오르내리는 차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폭포를 만들어 낸다.

 

지금도 이곳에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과거 이곳을 찾았던 옛 선비들의 서정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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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위치한 건국대에는 대학을 상징하는 넓은 호수가 캠퍼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호수는 그 면적이 약 2만평에 달해 서울에 있는 웬만한 대학 하나를 다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란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말을 키우던 목장의 습지였는데 습지를 정리하면서 그 물들을 모아 넓은 인공호수가 조성되었다.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한시에 나오는 ‘일감(一鑑)’과 ‘활수(活水)’를 따와 ‘거울같이 맑은 호수’라는 뜻의 일감호(一鑑湖)란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지하철 2호선 건대역에서 내려 정문까지 이르는 길목은 58층 높이의 스타시티를 비롯한 복잡한 상업시설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복잡한 거리를 뒤로하고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드넓고 평온한 일감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호수를 둘러싼 둘레길은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잘 마련되어 있다. 호숫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를 바라보니 이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호수가 넓다 보니 체육대회 때는 이 둘레길을 몇 바퀴 도는 마라톤이 열리기도 하였다. 2학년 때 나도 출전하여 열심히 뛰었던 추억이 눈에 선하다. 호수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주변의 건물들은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호수 건너편 중앙에는 캠퍼스의 랜드마크인 새천년관이 우뚝 세워져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로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주변 조경과 더불어 멋진 파노라마를 구성한다. 좌측의 생명과학관 건물과 우측의 쿨하우스라 불리는 기숙사가 멋진 근경으로 다가온다. 호수의 우측 앞쪽에는 소가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와우도’로 불리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이 섬은 왜가리 집단 서식지로 유명하다. 그 앞으로 고요한 호수의 적막을 깨고 노니는 새들의 물장구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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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사이에 두고 캠퍼스의 좌측면을 연세대와 마주하고 있는 이화여대도 그 역사만큼이나 신촌골의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는 곳이다. 2호선 이대역에서 정문으로 이어지는 경사로를 지나 정문에 들어서면 고려대의 중앙광장이나 새로 조성된 연세대의 백양로와는 또 다른 느낌의 열린 공간이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른바 ECC(이화캠퍼스복합단지)라 불리는 공간이다.

 

2008년에 완공된 이 ECC는 1989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현상설계에서 당선한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선된 안이다. 과거 대운동장이 있던 곳에서부터 본관까지 이어지는 큰 계곡을 만들어 계곡 양옆으로 지하 6층까지 다양한 공간들을 집어넣었다.

 

 

이 계곡을 만듦으로 해서 캠퍼스 입구에서부터 본관까지 탁 트인 전망이 가능하게 되고 필요한 캠퍼스의 건축공간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끌어내었다. 지하라도 측벽의 넓은 채광면적을 통하여 어느 층에서건 충분한 채광이 이루어진다. 계곡의 끝부분에는 지하로 파 내려간 만큼 커다란 계단광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필요시 이곳은 대형 노천극장이 된다.

 

건물 윗부분은 조경으로 처리하여 원래 이곳의 지형이 초입에서 본관까지 완만하게 높아지는 구릉이었는데 그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한다. 2만평에 달하는 건축공간을 집어넣고도 지상에는 마치 아무런 건축행위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넓은 녹지공간이 조성되었다. 그 덕에 본관을 중심으로 왼쪽의 대강당이나 중강당 등 다수의 주요 건물들이 고딕풍으로 이루어져 있는 캠퍼스의 정체성이 더욱 돋보인다.

 

ECC는 명쾌한 형상으로 이화여대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큰 볼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기존 건물들이 가지고 있던 캠퍼스의 정체성을 잘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윤희철 대진대 교수 휴먼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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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풍경은 개별 건물들이 연속성을 이루어 만들어진다. 연속되어지는 건물과 조경이 어우러져 하나의 콘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기관이 대학이다. 대학 캠퍼스는 대학이 지니는 이념과 역사 등이 각각의 건축물에 스며들어 조경과 더불어 대학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서울 신촌에 있는 연세대도 타 대학과 구별되는 독특한 캠퍼스의 이미지가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최근 완성된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로 널찍한 공원이 도시민을 반긴다.

 

백양로 지하공간으로 주차장과 다양한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지상에는 차가 없는 보행자들을 위한 녹지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고려대 중앙광장에서의 시각적 개방감을 연세대에서 똑같이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새로 조성된 백양로가 연세대의 주요한 캠퍼스 이미지를 만들어내긴 하였으나 연세대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공간은 이 백양로의 끝 지점이다. 대학 본부로 사용되는 중앙의 언더우드관과 좌측의 스팀슨관, 우측의 아펜젤러관, 그리고 이 세 건물의 중앙에 위치한 학교의 창립자 언더우드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스팀슨관이 1920년 세 건물 가운데 2층으로 제일 먼저 건립되었고 이후 1924년 맞은편으로 배재학당을 설립하였던 아펜젤러를 기념하는 아펜젤러관이 세워졌다. 중앙의 언더우드관은 세 건물 중 가장 늦은 1925년에 지상 3층(중앙탑 5층)으로 지어졌다.

 

영국식 고딕풍으로 지어진 이 세 건물은 모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연세대의 상징적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 세 건물에서 보이는 석조의 고딕 언어들은 이후에 세워진 주변의 건축물들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느지막이 지어진 모더니즘의 건물들도 주조를 이루고 있는 캠퍼스의 고딕 이미지에 동화되어 있다.

 

이들 역사적 건물을 중심으로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나무들은 서로 어울려 멋진 연세대의 캠퍼스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난가을 신촌골의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시선을 멈춰 본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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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다운 눈이 전국을 덮었다. 서울에도 지난 주말 대설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 교통이 가장 큰 걱정이겠으나 다른 한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겨울의 마술쟁이다.

 

눈 내린 대학의 캠퍼스는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도심의 설경과는 자못 다른 서정이 묻어난다. 안암동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펼쳐지는 눈 덮인 캠퍼스의 모습이 그러하다.

 

 

고려대는 정문에서부터 광장 너머 좌우측 건물들이 모두 서양 중세의 성채 이미지를 풍겨낸다. 첨두아치로 된 창이나 뾰족지붕, 성벽 모양을 한 매스 등 고딕의 언어들 속에서 이 대학의 오랜 역사가 배어나온다. 정문 뒤로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중앙광장은 도심의 복잡한 거리에서 짓눌려 있던 도시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준다.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에 조성된 이 광장은 우선 학교를 드나드는 차량들을 모두 지하로 유도했다. 그 덕에 지상에는 시계가 탁 트인 넓은 녹지 광장이 조성되어 보행자들의 천국이 마련되었다.

 

광장 뒤편에 위치한 본관은 고려대의 모체가 되었던 보성전문학교 시절의 본관으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박동진이 설계한 고딕풍의 건축물이다. 본관 앞에는 설립자인 김성수의 동상이 중앙 축 선상에 놓여 캠퍼스의 중심적 위치를 웅변하고 있다. 좌우의 눈 덮인 숲 뒤쪽으로는 중세의 성곽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대칭을 이루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우측 건물은 대학원을 겸하고 있는 중앙도서관이고 좌측에 시계탑이 올라와 있는 건물이 문과대학이다.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앞쪽에 놓인 분수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이 넓은 녹지광장의 적막을 누그러뜨린다.

 

하얀 눈이 분수의 재잘거림도 덮어 잠재운 이 겨울,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마주하는 눈 내린 서정에 잠시 복잡한 마음을 침잠시켜 본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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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로터리 북쪽 SK주유소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주변 건물들과는 색다른 모습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박스 형상을 하고 있으나 중간에 V자 모양의 기둥이 상부의 액자처럼 생긴 매스를 지지하고 있는 독특한 형상의 건축물이다.

 

이 건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JCC(재능아트센터) 빌딩이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의 ‘본태박물관’이나 원주 오크밸리의 ‘뮤지엄 산’ 등 몇몇 작품이 지방에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 그의 작품이 세워진 것은 이 건물이 처음이다.

 

건물은 크게 2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쪽에 V자형 기둥이 있는 건물이 공연장, 전시장이 있는 아트센터이고 그 뒤쪽에 있는 건물이 강연, 토론, 연구 등이 이루어지는 크리에이티브센터이다. 그림은 뒤쪽의 크리에이티브센터를 그린 것이다. 노출콘크리트를 이용한 기하학적 형태를 즐겨 사용하는 안도 다다오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 있다.

 

 

도로변으로 기다란 매스가 공중에 대각선으로 띄워진 형태를 하고 있어 강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이 대각선의 매스는 그 내부가 계단형의 오디토리엄으로 내부의 기능을 그대로 감싼 형태이다. 하부에는 기둥을 생략함으로써 시원한 공간감이 연출된다. 최대한의 실내공간을 만들려고 대지를 벽체로 가득 채우는 보통의 건축물과 달리 이 건물은 저층부를 과감하게 비워두었다.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시각적 개방감을 선사하고자 한 배려심이 읽히는 대목이다.

 

출입구 전면에 걸쳐놓은 3개의 붉은색 철골은 ‘뮤지엄 산’ 입구에서 보이는 알렉산더 리버만의 붉은색 아치형 입구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이미지로 느껴진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안도 다다오가 구상한 다양한 건축공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정원은 사방이 모두 트여 있어 서울을 폭넓게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된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안도 다다오의 생각을 읽어본다는 것.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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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서울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뜻밖의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출구를 나오면 왕복 2차로의 차도에 접한 상가건물 뒤편으로 조그만 골목길 몇 개가 북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오래된 단층주택들에서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세월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이곳이 북촌보다 먼저 조성되었다는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1920년대에 개발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한옥단지로서 어언 1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주변의 빌딩숲에 가려 존재조차를 잊게 했던 이곳은 2004년부터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재개발의 열기는 활기를 띠지 못하고 130여개의 한옥이 그대로 남아 도심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이곳이 몇 해 전부터 한옥의 멋스러움, 전통 골목의 정감을 살린 멋진 공간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고즈넉한 한옥의 구조를 잘 살린 카페나 전통찻집, 음식점, 스튜디오 등이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이곳은 점차 멋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 도심 속에서 전통 한옥의 모습이 간직되어 있고 100년 전 도시 서민들의 생활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투어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 한옥 골목에서 바라보이는 서울 중심부 뒷골목의 풍경은 도시빌딩의 삭막한 분위기에 지쳐 있는 도시민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두 사람의 어깨가 마주칠 정도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세월의 때가 묻은 개량한옥의 처마와 그 위로 얽혀 있는 전선들의 모습은 중장년층들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골목 끝에 우뚝 서 있는 빌딩들은 이곳이 서울의 중심부라는 자존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이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조그만 한옥 카페가 도시의 유랑인들을 유혹한다.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직접 볶아서 내려주는 커피 한 잔과 마주하는 익선동 서민 한옥의 구조미는 각박한 도시민들의 마음을 녹여준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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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북단에는 천주교의 성지이자 건축적으로 의미가 있는 절두산 순교성당이 있다.

강변북로를 달리며 서강대교에서 양화대교 쪽으로 진행하다보면 우측으로 독특한 형상을 한 절두산 순교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양화나루터였다. 이 양화나루에는 지형이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과 유사하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고 이름 지어진 높이 20m의 언덕이 있었다.

 

양화나루터는 이 잠두봉과 어울려 빼어난 풍치로 이름이 높았다. 이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조선의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은 이곳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고 시를 짓는가 하면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꼭 들를 만큼 유명한 명승지였다.

 

 

그러나 이 언덕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1만명에 가까운 천주교인들이 참수를 당했던 곳이 되어 절두산(切頭山)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던 1967년 이곳에 이희태의 설계로 성당과 박물관이 세워졌다. 절벽 끝에 위치한 성당은 사다리꼴 평면에 원형의 지붕을 얹은 100여석의 아담한 규모이다. 원형지붕은 선비의 ‘갓’을 표현한 것이고, 우뚝 솟아있는 종탑은 천주교인들을 참수할 때 쓰던 칼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그림에서 성당 우측에 길게 놓인 부분이 박물관이다. 역시 갓 모양의 넓은 지붕을 받치는 쌍둥이 기둥들은 발코니에 열을 지어 있는 모습으로 독특한 형태미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우리의 전통 요소가 콘크리트를 통하여 표출된 건축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언덕 아래 강변도로에서 올려다보이는 성당의 모습과 나무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 옛날 선비들이 즐겨 찾던 명승지 양화진이 다시 재연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절두산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순교가 서려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는데 그저 아름답게만 느낄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윤희철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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