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한강 몹시 흐린 날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우울일까. 약속이라도 한 듯 흐린 눈발 속 행인들은 죄다 어두운 무색옷을 걸쳤다. 옷의 두께가 시린 생을 다 녹이지는 못하는지 몸은 계속해서 움츠러들고 있다. 숨을 곳도, 가려줄 곳도 없는 탁 트인 한강 위로 귓불을 휘감는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지금의 한강대교인 한강인도교 위에서 촬영했을 것이다. 사실은 기막힌 구도 덕분이겠지만, 사진 속 풍경이 하도 추워서 저 멀리 한강철교가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저 멀리 점점이 사라지는 행렬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저 뿌연 풍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무겁고 축축하고 어두운 겨울 날씨는 엄연한 현실이다. 눈 위로는 그 현실에 순응한 혹은 거역한 발자국들이 .. 더보기 이전 1 ··· 825 826 827 828 829 830 831 ··· 104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