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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2

족보 없는 건축의 위대함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와 마추픽추 사이의 모라이라는 곳에 크고 작은 네 개의 원형극장으로 이루어진 기념비적인 유적이 있다. 이 원형극장은 시간이 흘러 형태는 일부 풍화되고 다랑이밭으로 변용되었음에도 비교적 처음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장 중심부의 극장은 무려 6만명의 관객을 수용하도록 계획되어 있으며 가장 아랫부분인 무대는 신기하게도 그리스 원형극장의 그것과 크기가 일치한다. 또 계단식 관람석에는 30㎝ 관경의 수로가 하단 무대까지 매입되어 있다. 건기에는 주변 산봉우리의 용천수를 극장으로 유입시켜 활용하고 우기에는 배수로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극장의 구심점인 무대 바닥은 땅속으로 물 빠짐이 좋게 만들어져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극장의 깊이는 150m로 해발고.. 더보기
제약의 힘 올 한 해 초청된 건축 강연회마다 청중에게 공통된 다음 두 가지 질문을 받았다. 하나는 창의적 설계들에서 영감의 원천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두 번째는 다음번에 만들어 보고 싶은 건축은 어떤 것인가이다. 먼저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약’이고 두 번째에 대한 것은 ‘아무 제약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뭘 한다 해도 특별하게 만들 수 없다’이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 무릇 똑같은 장소란 없는 법이다. 모든 땅에는 각기 다른 제약이 존재한다. 대지 조건과 규모의 제약, 법규적인 제약, 예산의 제약, 시간의 제약 등 매 프로젝트는 매번 다른 제약들을 내포하고 있다. 건축가는 늘 새로운 장소에서 생활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새로운 꿈을 잇는 직업이다. 훌륭한 디자인이란 가만히 보면 수많은 제약들을 극복하면서 비.. 더보기
너의 집이자 우리 모두의 도시 만약 당신이 교도소를 설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건축가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우선 당신은 감옥이 수행해야 할 기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범죄자를 벌주기 위한 장소일 것인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 그들이 악한 일을 못하게 격리하는 장소이어야 할 것인가? 혹은 나쁜 사람들이 치료되어 구제될 수 있는 장소여야 할 것인가? 물론 각 결정은 전혀 다른 모습의 설계 방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첫째 것은 냉혹한 지하 감옥과 같은 결과일 것이고, 두 번째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창고, 반면에 셋째 것은 아마 자연 속의 요양소의 성질과도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의 결정은 건물이 완성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교도관들뿐 아니라 수천명에 달하는 죄인을 인간적으로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 더보기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은 가깝다 1941년 가난한 가정에서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난 소년의 부모는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울 형편이 못되어 첫째를 외할머니에게 입적시킨다. 소년은 자라면서 건축가를 꿈꾸었다. 할머니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 형편에 성적도 좋지 않아 대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접지 않은 채 공고 졸업 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건축 책을 탐독하였다. 어느 날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은 한참 부족했다. 매일 선 채로 보다 남이 사갈까 살며시 책방 구석 책더미 아래 숨기고 돌아섰다. 다음 날 책이 밖으로 나와 있으면 다시 책을 숨기는 일을 반복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기어코 그 책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더보기
설계공모전의 ‘웃픈’ 추억 ‘국회의사당-서울시청사-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독일 국회의사당-파리 퐁피두센터-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차이점으로 전자는 20세기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 후자는 20세기 인류문화유산. 공통점은 모두 설계 공모전을 통해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한 해 세금을 들여 짓는 공공건축물들의 총공사비는 약 30조원에 육박한다. 상당수가 설계 공모를 통하고 있지만 명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웃픈’ 역사적 사건을 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1931년 스탈린은 레닌 사망 후 입지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에트 의회의 건축을 결정하고 설계 공모에 착수한다.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를 필두로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하여 획기적인 제안들이 쏟아졌다. 두 번에 걸친 공모 과정은 불투명했고 당선작으로 무명에 가까운 자국 건축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