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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모라이의 원형극장. 한정된 자원과 기법을 이용해 유행이나 특정 양식과 무관하지만 주변 환경과 조화된 매우 기발한 건축적 성취를 보여준다. 페루관광청 제공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와 마추픽추 사이의 모라이라는 곳에 크고 작은 네 개의 원형극장으로 이루어진 기념비적인 유적이 있다. 이 원형극장은 시간이 흘러 형태는 일부 풍화되고 다랑이밭으로 변용되었음에도 비교적 처음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장 중심부의 극장은 무려 6만명의 관객을 수용하도록 계획되어 있으며 가장 아랫부분인 무대는 신기하게도 그리스 원형극장의 그것과 크기가 일치한다. 또 계단식 관람석에는 30㎝ 관경의 수로가 하단 무대까지 매입되어 있다. 건기에는 주변 산봉우리의 용천수를 극장으로 유입시켜 활용하고 우기에는 배수로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극장의 구심점인 무대 바닥은 땅속으로 물 빠짐이 좋게 만들어져 아무리 많은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는다. 극장의 깊이는 150m로 해발고도 35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극장 부분이 바람과 햇볕의 영향으로 주변에 비해 5~10도가량 따뜻하다고 한다. 잉카시대에 이 온도차를 이용해 감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고 실험한 것으로도 추정하고 있다. 아쉽게도 여기서 당시 어떤 공연이나 의식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주변에 비해 움푹 파인 지형을 인간의 지혜로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공동체의 지적 향연과 배움의 중심공간으로 만든 것은 실로 감탄할 만한 건축적 성취이다. 


1964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버나드 루도프스키에 의해 ‘건축가 없는 건축 - 족보 없는 건축의 간략한 소개’라는 특이한 이름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앞의 원형극장을 포함하여 건축가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세계의 토속 건축물 사진들로 구성된 전시는 당시 주류였던 국제주의 양식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가 보여준 변방의 토속 건축은 근대건축이 망각했던 건축의 지혜, 상상치 못했던 문제 해결 방식, 원초적 아름다움으로 큰 울림을 주었다. 루도프스키는 지켜야 할 규범이나 양식으로부터 자유로웠던 토속 건축이 결코 열등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변 환경에 조화되고 인간 친화적이며 풍요롭기까지 하다고 역설했다. 규범에 구속되지 않고 본연에 충실할 수밖에 없으니 기성 건축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발한 해법을 낳았다. 지역의 한정된 자원과 기법은 제약인 동시에 고급 건축에선 찾기 힘든 생동감과 진솔함을 만든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주변과 타자의 가치에 자신을 억지로 꿰어 맞추며 살기보다는 스스로의 제약들을 직시하고 묵묵히 무언가를 끝까지 밀고 나갈 때 비로소 생동감 넘치고 개성적인 자아가 만들어진다.


<조진만 건축가>

Posted by Kh-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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