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도시 공주의 구도심 속 하천변 보행로 한쪽에 주민을 위한 한점 그늘과 쉼터를 제공하는 업무시설 제민천 앱스(Apse). ⓒ신경섭
만약 당신이 교도소를 설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건축가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우선 당신은 감옥이 수행해야 할 기능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범죄자를 벌주기 위한 장소일 것인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 그들이 악한 일을 못하게 격리하는 장소이어야 할 것인가? 혹은 나쁜 사람들이 치료되어 구제될 수 있는 장소여야 할 것인가? 물론 각 결정은 전혀 다른 모습의 설계 방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첫째 것은 냉혹한 지하 감옥과 같은 결과일 것이고, 두 번째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견고한 창고, 반면에 셋째 것은 아마 자연 속의 요양소의 성질과도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의 결정은 건물이 완성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교도관들뿐 아니라 수천명에 달하는 죄인을 인간적으로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건축가는 건축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요구사항뿐만이 아니라 한편으로 그 시대와 사회를 보아야 한다. 건축사의 설계 행위에는 변호사가 지녀야 할 사회정의나 의사의 생명에 대한 윤리의식과 맞먹는 공공적 가치가 있다. 건축가는 건축주를 위해 일을 하지만 동시에 사회와 시민을 위해서도 일해야 하는 게 바른 윤리관이다. 왜냐면, 건축주가 자기 재산으로 개인의 건물을 짓는다 해도 길가는 행인이나 주변 사람도 그 공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건축은 집주인뿐 아니라 시민들의 이익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건축물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물이 우리를 만든다.” 윈스턴 처칠이 1943년 10월,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의회 의사당을 다시 지을 것을 약속하며 행한 연설의 한 부분이다. 건축과 우리 삶의 관계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표현한 말이 없다. 건축 대신 책, 음악, 영화, 음식 등 우리 삶을 이루는 바탕이 되는 여러 가지 창조 행위로 바꾸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건축은 우리의 생활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 좋은 건축 속에서 살게 되면 좋은 사람이 되게 마련이고 좋은 도시공간에서 살면 서로 악다구니 하지 않고 공감하는 소통사회가 되기 마련이다.
<조진만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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