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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붉은 먼지와 황금빛”

문화는 빛으로 이어진다. 빛은 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시대의 빛이다. 빛은 먼지투성이의 세상마저 붉게 단장시켜, 빛으로 물든 속세를 ‘붉은 먼지(홍진·紅塵)’라고 부르게 한다. 빛은 볕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로애락으로 뒤엉킨 응어리를 녹여내 영원에 닿게 한다. 빛은 마음속에 곱디고운 비단결을 보는 순간을 선사한다. 빛의 아름다움은 붉은 먼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성스럽다. 각 시대의 빛은 세속의 홍진과 어우러져 제 빛깔의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금귀고리’, 신라 6세기, 경주 합장분 출토, 국보 90호





10월에는 경주로 가자. 신라로 가자.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은 빛을 찾는 순례다. 신라의 황금빛은 권력의 군림이 아닌 자연과 사람, 성과 속의 연결빛이다. 신라에서 황금빛으로 성과 속을 매개한 금관 주인을 떠올린다. 그의 빛은 권력의 영광이 아니라, 성스러운 자연과 속세의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노력이다.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금관을 쓰고, 나뭇잎이 달린 귀고리를 걸고, 물고기 같은 생명장식을 허리춤에 차고, 자연과 사람을 매개하려는 꾸밈이다.

황금빛의 귀고리에 눈길을 주자. 금관의 빛을 돕는 빛이다. 작기에 섬세하고, 좌우 균형을 맞추기에 안정된다. 금귀고리의 대장장이는 연금술사처럼 금으로 영원을 만들었다. 정성껏 모은 금을 녹여 순도를 높이고, 작은 금싸라기를 수없이 만들어, 하나씩 붙여간다. 섬세한 눈빛과 떨림 없는 손길은 마법이다. 금알갱이를 하나씩 붙여 육각형 윤곽을 만들고 동그란 고리로 연결시킨다. 그 안에 새싹 모양을 배치하며, 생명의 연속성을 기원한다. 그 아래로 늘어뜨린 풍성한 나뭇잎으로 왕성함을 완결시킨다. 풍성한 나뭇잎들은 한 사람의 권력이 아닌, 세상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것을 상징한다.

신라는 자연의 빛을 생명력으로 해석하고, 황금빛으로 표현한 문화다. 그 황금빛은 대지를 품고 세상사람들과 함께해야 빛나는 붉은 먼지 속의 빛이다. 이 가을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담겨진 다양한 빛을 찾아서, 세속에서 성스러움으로, 다시 세속으로 돌아오는 빛의 순례를 떠날 때다.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