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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선승혜의 그림친구

한 조각 조각 이 땅의 문화


오세창(1864~1953)은 ‘삼한일편토(三韓一片土)’(1927)로 문화란 이 땅에서 한 조각 한 조각 무명(無名)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록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삼한의 한 조각 흙’이라는 ‘삼한일편토’는 상단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와당 탁본을 오려서 콜라주처럼 붙이고, 하단에 촘촘하게 해설을 쓴 작품이다. 글의 마지막에 삼한의 한 조각의 와당, 그 흙이 우리 땅의 보배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병상에서 약탕 화로를 곁에 두고, 먹을 갈고 탁본해 겨우 그 형태를 보존하고 그 연유를 기록한다고 썼다. 탁본을 오려서 운율감 있게 배치하고, 어울리는 인장으로 강약을 더해준 조형감각이 세련되다.

오세창은 시대전환기에 한국미학의 정초자로서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인물이다. 조선말 중인의 역관으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언론인·서화연구자·수집가·서예가로 살아간 인물이다. 한국서화가 기록인 <근역서화징>과 인장사전 <근역인수>의 저자이자, 한국서화 컬렉션 <근묵> 등의 수집가다.


오세창, 삼한일편토, 종이에 탁본 콜라주, 1927_경향DB



그는 <근역서화징>의 서문에서 ‘천기의 완전함을 보존하고, 정신의 빛이 빛나게 하며, 인문 채색이 없어지지 않도록 한다’라는 한국미학의 관점을 제시했다. 이 작품도 이 땅의 흙 조각을 모아서 기록하는 태도로 일제강점기에 연속성을 잃어버린 한민족에게 기억조각들이 정신의 빛이라고 알려준다. 글 마무리에 쓰인 ‘박아군자(博雅君子)’의 태도는 학식뿐만 아니라, 단아한 마음가짐도 중요하다는 한국미학의 지향점까지 시사한다.

하나하나의 조각을 귀하게 모아서 기록하는 미적 태도는 감상자의 마음을 겸손하게 한다. 요즘 우리가 역사를 영웅들의 무용담으로 보고, 그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며, 칭송하고 비난하는 나날들을 보내는 것은 아닐까? 오세창이 삼한의 와당 조각들을 보여주듯 문화란 이 땅을 살아간 무명의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미학을 성찰하고 싶다.



선승혜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