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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걷기

재닛 카디프, 조지 뷔레스 밀러, 갈림길의 도시, 2014, 영상설치


걷기는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건만, 인간이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걷기는 일상에서 멀어졌고, 세계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 닿고 싶다면, 자동차의 속도에서 내려와 걷기가 만들어주는 리듬에 몸을 맡길 필요가 있다. 인간 신체에 최적화된 속도로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걷기는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철학이기도 했다. 재닛 카디프는 캐나다 앨버타의 밴프 센터에 머물던 1991년, 처음 걷기 작업을 시작했다. 출발은 느슨했다. 관객은 12분간 흘러나오는 작가의 내레이션에 귀를 기울인 채 숲을 거닐면 된다.

 

걷기 시리즈는 회를 거듭하면서 공간 탐색의 방법을 확장시켜 나갔다. 특히 2013년 카셀도큐멘타와 2014년 시드니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업은 아이팟을 이용하여 가상과 현실 세계를 절묘하게 혼합시켜 주목을 받았다. 시드니비엔날레 출품작이었던 ‘갈림길의 도시’는 보르헤스의 소설 <갈림길의 정원>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실시간 도시를 배경으로 카디프와 조지 뷔레스 밀러는 거리가 기록하고 있는 역사를 떠올리면서 걸었을 때 발견할 법한 가상의 사건, 공연 및 음악, 경험 등을 시나리오에 배치했다.

 

영상이 담겨 있는 아이팟과 헤드셋을 빌린 관객은 내레이션이 인도하는 동선을 따라 항구, 분주한 거리, 계단을 올라가며 외로운 골목길을 만난다. 그곳에서는 문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퍼포먼스는 지금 현재 이곳 내 눈앞이 아니라, 과거 언제 이곳에서 있었던 퍼포먼스로, 화면 속에만 있다. 비디오의 가상성과 현실 세계의 구체성이라는 두 가지 현실이 혼합된 상황에서 혼돈을 느끼는 관람자는 자신이 걷고 있는 공간, 걷는 행위, 내가 머무는 시간의 의미를 돌이켜본다. 걷기가 선사하는 낯선 순간이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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