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로, ‘자화상’, 1873년, 오르세 미술관
피사로는 모든 인상파 화가들의 스승이었다. 인상주의 여성화가 매리 캐사트는 “돌멩이들에게도 올바른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선생”이었다고 회고했다. 세잔도 자기 자신을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피사로의 제자”라고 지칭할 정도였다. 이처럼 피사로는 한결같은 평판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스승으로 묘사된다.
피사로가 진정한 스승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청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상주의자들의 아지트인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 마네와 같은 혁명적인 화가들의 담론에 귀기울였다. 피사로는 말을 아끼는 성격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동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엉뚱하지만 신중한 견해를 보태곤 했다. 주로 그의 말상대는 고갱과 세잔이었는데, 고갱이 오만함에도 내치지 않았고, 괴짜 세잔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특히 주변에 지적인 대화를 나눌 만한 친구가 없었던 세잔에게 피사로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불안하고 소심했던 세잔은 피사로를 만나면서 혼란스러운 내면세계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피사로는 세잔에게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쳤고, 엄밀한 관찰력에 기초해서 그림을 그리도록 충고했다. 이처럼 피사로는 모든 인상주의자들에게 싱그럽고 따스한 미술학교였던 것이다.
피사로 자신은 대중으로부터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회를 구성하거나, 개인전을 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형편이 어려운 화가들에게 고객을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반 고흐가 정신과 의사 가셰 박사를 소개받은 곳도 바로 피사로의 집이었다. 피사로는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젊은 세대들과 교유했다. 그는 신인상파 시냑이나 쇠라가 발명한 점묘법처럼 당대 비평가들이 혹평하는 젊은 화가들의 새로운 기법에도 서슴지 않고 동조했으며,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요즘 예술계에 이런 스승이 있다면 어떤 대접을 받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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