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유경희의 아트살롱

광기의 꽃, 튤립포매니아


암브로시우스 보스하르트, 네송이 튤립, 1615년


꽃 중의 꽃은 어떤 꽃일까? 시대와 나라를 초월해 단연 장미꽃일 것이다. 그러나 장미 이전의 꽃의 제왕은 튤립이었다. 서양의 옛 그림에서 장미보다는 튤립이 대단히 정묘하게 역동적으로 그려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튤립은 보통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수입한 것이다. 원래 천산산맥(파미르고원) 구릉지대가 원산지인 튤립은 페르시아와 터키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고, 네덜란드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튤립은 꽃이 크고 튼튼하게 잘 자라서인지 곧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네덜란드의 할렘과 레이덴이 제2의 고향이 됐다.

황금기 네덜란드에서 비싼 가격으로 매매됐던 튤립은 단색이 아니라 흰색 바탕에 붉은색 무늬 등 두 가지 이상의 색이 섞여 있는 품종이었다. 이 화려한 튤립은 ‘모자이크 바이러스’라고 불리는 병균에 감염돼서 그처럼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종류의 튤립 구근을 만드는 데에는 6~7년이 걸린다. 그나마 사람들이 원하는 환상적인 색채와 강렬한 무늬의 꽃은 이처럼 병에 걸린 것이어서 만들기도 쉽지 않고, 구근의 수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튤립은 매우 인기있는 품목으로 투기의 대상이 됐다.

이를테면 튤립의 구근 하나가 부유한 상인의 1년 매출의 두 배에 해당하는 가격에 팔리고, 웬만한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등 엄청난 투기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게다가 정물화가 칼뱅교의 종교화 역할을 대신했던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꽃잎이 왕관을, 황금빛 꽃술이 금전과 부를, 뾰족한 잎새가 검의 형태로서 분별력과 명예와 용기를 나타낸다. 이처럼 튤립의 멋진 교훈, 미적 조형성, 비싼 가격은 화가들로 하여금 정밀하게 표현하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투기과열로 튤립 가격이 폭락하자 화가들은 튤립을 어리석은 행위와 과욕의 상징으로도 사용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명 화가의 이런 그림까지도 보석의 가치에 비교되어 최상류층이 앞다투어 구매했다는 사실이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