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씨 뿌리는 사람, 1850년, 캔버스에 유채, 101.6×82.6㎝, 미국 보스턴미술관
반 고흐가 아버지보다 사랑했던 화가 밀레. 밀레는 노동의 가치를 평생 그림 속에서 실현했던 최초의 화가였다. 그는 화가로 출세하기 위해 머물렀던 파리에서 어린 아내를 폐병으로 잃고, 빈농 출신의 새 아내와 함께 바르비종에 정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가난한 농부처럼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척박하지만 소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목가적인 서정성이 우러나오는 ‘만종’과 ‘이삭줍기’ 못지않은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씨 뿌리는 사람’은 밀레가 바르비종에서 처음 그린 유화 중 하나다. 이 그림은 어둠이 오기 전인 해질 녘, 가파르게 경사진 산비탈을 배경으로, 건장해 보이지만 아주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농사꾼이 씨를 뿌리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어둡게 가려진 눈, 마른 듯 굳건한 턱과 벌어진 입 모양은 그가 아주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더군다나 일몰 직전 마지막 씨 뿌리기를 서두르는 마음까지도 절절히 와닿는다.
1850~1851년 이 작품이 프랑스 살롱에 전시되었을 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그림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평범한 농부가 역사화가 그려질 법한 커다란 캔버스에 영웅처럼 등장하고 있는 점을 못마땅해했다. 이전까지 미술작품의 주인공은 신화 속 인물, 역사적 영웅, 상류계급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었으며, 농부는 그저 어리석은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그림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퍼트리는 아나키스트를 연상시킨다는 등 혁명을 선동하는 불온한 그림으로 여겨져 혹평을 받았다.
진짜 밀레가 이 그림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그림을 옹호하던 비평가들처럼 그 역시 농부의 동작에서 배어나는 서사적 웅대함과 노동의 신성함을 찬양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 밀레는 아주 가까이서 본 단조롭고 가혹하고 비참한 일상을 사는 농사꾼의 모습에 자신이 그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희망찬 미래를 중첩시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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