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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미술 소환

전쟁놀이

노원희, 한길, 1980, 162.7×130.3㎝, 캔버스 유채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은 틀림없이 먹구름이다. 좋지 않은 징조를 비유할 때 등장하는 먹구름이 공기를 압박하면서 무겁게 땅으로 내려앉을 기세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어둡기만 하다. 구름 아래 동네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얼굴에 표정은 없지만 이들은 볼이 빨갛게 상기될 정도로 집중해서 뛰어노는 중이다. 저 멀리 자전거 타는 아이들이 보이고, 동생을 등에 업고 길에 나온 소녀의 모습도 보인다. 일군의 아이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무심히 화면을 훑어내리다보면 한 인물과 눈이 마주친다. 관람자를 향해 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고 서 있는 이 아이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오싹하다. 그러고 보니, 화면 속 몇몇 아이들이 총을 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군가는 감시당하며 바닥에 엎드려 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보인다. 어떤 아이는 포박당한 채 끌려간다. 아이들은 다름 아닌 전쟁놀이에 몰두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다니던 노원희는 대구 변두리에서 전쟁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즐긴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작가는 왜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장난감 총, 칼을 가지고 골목길을 누비면서 뛰어놀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가 거리에서 마주한 장면은 작가에게 개인의 사적인 폭력성 차원이 아니라 사회가 품고 있는 거대한 호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는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은 이 장면을 담은 그림을 1979년 시작해서 80년 초에 마무리했다. 작업의 출발은 전쟁놀이지만, 거리에 짙게 깔려 있는 어두운 분위기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암울한 근미래, 곧 들이닥칠 위기에 대한 징후처럼 보인다.

그 시절로부터 세월은 꽤 흘렀지만 오늘날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놀이에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36년 전 노원희의 작품이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고 있다.



김지연 ㅣ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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