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거리 골목에 잠복하고 있는 계엄군. 1980년 5월27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만약 사진 속에서 누군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보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림자 밑에 매복한 군인들이 달려나오는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상상은 곧 소리로 바뀐다. 달려가는 군인의 거친 군화 소리, 휙 개머리판을 내리치는 소리, 퍽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으악 차마 끝까지 못 내지른 비명, 푹 맥없이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 입이 없는 사진에서 이렇게 처참한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 소리가 잦아들 때, 이미 창백한 흑백사진은 흥건한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1980년 5월27일 광주 충장로에서 찍힌 사진이다. 손글씨처럼 투박한 간판을 살펴보면, 오락실, 당구장, 고전 음악실, 생맥줏집 등 이곳은 젊은이들의 거리로 짐작된다. 저 멀리 삼복서점 간판까지 보일 정도로 맑고 화창한 오월이지만, 거리에는 군인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차마저 한 대도 없고, 상점들은 모두 셔터문을 굳게 내렸다. 이날 새벽 다섯 시 십 분, 진압 작전 종료를 선언한 국가는 시민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엄포를 내렸다. 무려 2만5000의 군인을 투입하고 난 뒤고, 시민들은 국가의 무지막지한 폭력을 목격한 이후였다. 그 결과, 이 거리를 채워야 할 젊은이들은, 시민들은 죽거나 집에서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다.
국가가 국민을 죽였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된 80년 광주. 그날이 담긴 사진에서 숨어 있는 군인을 세다가, 이 텅 빈 거리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게 되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