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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된 사진들

컵의 숫자만큼

이 사진은 매우 무섭고 섬뜩하다. 테이블에 놓인 수저통과 양념통, 주전자, 양옆의 컵까지 모두 무섭다. 뒤에 걸린 태극기와 양옆에 쓰인 ‘자조’, ‘자립’이라는 단어 또한 섬뜩하다. 도대체 이것이 왜 무섭고, 섬뜩하단 말인가? 사진 속의 이곳은 형제복지원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대규모 식당 전경, 1981년. 경향신문사 자료사진

 

형제복지원은 1960년대 문을 열어 1987년까지 3164명을 수용했던 전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던 이곳에서 513명이 사망했다.

 

사진 속에 가지런한 도구들은 513명에서 3164명까지 악몽을 겪었을 그들의 존재를 각인시켜준다. 단지 숫자가 아니라 식당에서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고 물을 마셨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저 많은 컵만큼, 저 커다란 식당을 채웠을 만큼 누군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각성시켜준다.

 

그들은 이유 없이 끌려와 갇혔고, 이유도 모른 채 굶주려 죽거나 맞아 죽었다. 일부 시신은 300만~500만원에 대학병원의 해부학 실습용으로도 팔려갔다. 1975년부터 1986년 사이에 513명이 죽었지만, 정부 당국의 수용 정책과 시설 운영자들의 경제적 타산이 일치되면서 무려 12년 동안 진실은 은폐되었다. 이처럼 끔찍한 인권 유린이 벌어졌지만, 1989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게 내려진 최종 선고는 고작 징역 2년6월. 관계 당국의 직무유기, 부정과 비리행위 없이도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사진 속 태극기가 무섭고 섬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지수 보스토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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