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동쪽 끝자락에는 궁궐의 위세 높은 형상과는 사뭇 다른 소박한 모습의 한옥 몇 채가 눈에 들어온다. 조선 제24대 왕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위해 지었다는 낙선재(樂善齋)가 그것이다
‘선한 일을 즐겨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낙선재와 그 오른쪽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의 석복헌(錫福軒), 그리고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의 수강재(壽康齋)를 합하여 이들 영역 전체를 낙선재라 부른다. 헌종의 정비였던 효현왕후 김씨가 혼례를 치른 지 2년 만에 운명하자 뒤이어 효정왕후 홍씨가 간택되었다.
그러나 혼례 후 만 2년이 흘러도 후사가 없자 헌종은 이를 이유로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하게 된다. 경빈 김씨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헌종은 궁궐 한 모퉁이에 자신의 서재인 낙선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건물인 석복헌을 지어 선물한다.
그러나 헌종이 너무 짧은 생애(1827~1849)를 마친 탓에 석복헌에서 경빈 김씨와 함께했던 시간은 겨우 2년여밖에 되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석복헌 우측에 있는 수강재는 헌종의 할머니인 순원왕후의 육순을 기념하여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지어진 건물이다.
창덕궁 안에 건립된 사대부 주택인 낙선재는 조선 마지막 왕인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가 기거했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석복헌은 이은의 아들 이구씨와 그의 아내 줄리아가 미국에서 돌아와 생활했던 곳이고, 수강재는 덕혜옹주가 마지막까지 생활하다 생을 마친 곳이다.
낙선재 뒤뜰에는 순종의 비 윤씨를 위해 지은 별당인 한정당(閒靜堂)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봄철이면 낙선재와 한정당 사이의 경사진 화계(花階)에는 매화, 앵두꽃, 살구꽃이 봄경치의 장관을 이룬다.
봄내음이 서서히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요즘 낙선재 뒤뜰에서 연출되는 봄꽃의 향연에 잠시 흐르는 시간을 잊어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철 | 대진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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