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슬프면 몸짓이 슬퍼지는 걸까, 슬픈 동작이 슬픈 마음을 가져오는 걸까. 카메라 앞에 앉은 바스 얀 아더르는 슬퍼하기 시작했다. 슬픔의 종착역은 눈물인 모양이다. 그는 울기 위해 집중했다. 숨을 크게 들이쉰 그는 눈을 감고, 입술을 오물거리고, 볼을 찌푸렸다. 손으로 머리칼을 휘젓고, 눈꺼풀을 문질렀다. 슬픈 제스처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는 사이사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살짝 턱을 들어 올리고 슬그머니 눈을 뜨는 순간 그의 표정에서는 불현듯 슬픔이 사라졌다. 그는 계속 슬퍼했지만, 곧바로 충분히 슬퍼지지는 않았다. 슬픔의 동작이 커지면서, 드디어 그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성인 남성의 눈물을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I’m too sad to tell you), 1971, 16㎜ 필름, 3분34초 ⓒ Mary Sue Ader-Andersen
소리 없는 흑백 영상 속에서 그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오열 사이사이 한숨을 돌렸다. 그때마다, 그를 둘러싼 슬픔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오열의 표정을 짓는 순간 다시 그는 슬퍼졌다. 슬픔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슬픔이 멈추는 순간의 공백이 차가웠다. 작가의 감정에 동화되던 관람자의 감정에 자꾸 균열이 갔다. 그는 3분34초간 슬퍼했다. ‘전달할 수 없는 감정적인 상태’를 극도의 슬픔으로 표현했다는 작품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못하겠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의 기능을 상기시켰다. 타인의 슬픔에 닿는 일은 힘들다.
‘슬픔’을 작업했던 그는 그로부터 4년 후, 바다 위에서 사라졌다. 초소형 보트를 타고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도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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