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다운 눈이 전국을 덮었다. 서울에도 지난 주말 대설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 교통이 가장 큰 걱정이겠으나 다른 한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겨울의 마술쟁이다.
눈 내린 대학의 캠퍼스는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복잡한 도심의 설경과는 자못 다른 서정이 묻어난다. 안암동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펼쳐지는 눈 덮인 캠퍼스의 모습이 그러하다.
고려대는 정문에서부터 광장 너머 좌우측 건물들이 모두 서양 중세의 성채 이미지를 풍겨낸다. 첨두아치로 된 창이나 뾰족지붕, 성벽 모양을 한 매스 등 고딕의 언어들 속에서 이 대학의 오랜 역사가 배어나온다. 정문 뒤로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중앙광장은 도심의 복잡한 거리에서 짓눌려 있던 도시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준다.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에 조성된 이 광장은 우선 학교를 드나드는 차량들을 모두 지하로 유도했다. 그 덕에 지상에는 시계가 탁 트인 넓은 녹지 광장이 조성되어 보행자들의 천국이 마련되었다.
광장 뒤편에 위치한 본관은 고려대의 모체가 되었던 보성전문학교 시절의 본관으로 일제강점기인 1934년 박동진이 설계한 고딕풍의 건축물이다. 본관 앞에는 설립자인 김성수의 동상이 중앙 축 선상에 놓여 캠퍼스의 중심적 위치를 웅변하고 있다. 좌우의 눈 덮인 숲 뒤쪽으로는 중세의 성곽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이 대칭을 이루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우측 건물은 대학원을 겸하고 있는 중앙도서관이고 좌측에 시계탑이 올라와 있는 건물이 문과대학이다. 겨울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앞쪽에 놓인 분수가 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이 넓은 녹지광장의 적막을 누그러뜨린다.
하얀 눈이 분수의 재잘거림도 덮어 잠재운 이 겨울, 고려대 중앙광장에서 마주하는 눈 내린 서정에 잠시 복잡한 마음을 침잠시켜 본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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