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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철의 건축스케치

익선동 한옥 골목

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서울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뜻밖의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출구를 나오면 왕복 2차로의 차도에 접한 상가건물 뒤편으로 조그만 골목길 몇 개가 북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 골목길에 들어서면 오래된 단층주택들에서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은 세월의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이곳이 북촌보다 먼저 조성되었다는 익선동 한옥마을이다. 1920년대에 개발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한옥단지로서 어언 1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주변의 빌딩숲에 가려 존재조차를 잊게 했던 이곳은 2004년부터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재개발의 열기는 활기를 띠지 못하고 130여개의 한옥이 그대로 남아 도심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이곳이 몇 해 전부터 한옥의 멋스러움, 전통 골목의 정감을 살린 멋진 공간으로 변신하기 시작하였다. 고즈넉한 한옥의 구조를 잘 살린 카페나 전통찻집, 음식점, 스튜디오 등이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이곳은 점차 멋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 도심 속에서 전통 한옥의 모습이 간직되어 있고 100년 전 도시 서민들의 생활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투어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 한옥 골목에서 바라보이는 서울 중심부 뒷골목의 풍경은 도시빌딩의 삭막한 분위기에 지쳐 있는 도시민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두 사람의 어깨가 마주칠 정도의 좁은 골목길 사이로 세월의 때가 묻은 개량한옥의 처마와 그 위로 얽혀 있는 전선들의 모습은 중장년층들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골목 끝에 우뚝 서 있는 빌딩들은 이곳이 서울의 중심부라는 자존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있는 이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한 조그만 한옥 카페가 도시의 유랑인들을 유혹한다.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직접 볶아서 내려주는 커피 한 잔과 마주하는 익선동 서민 한옥의 구조미는 각박한 도시민들의 마음을 녹여준다.

 

윤희철 대진대 휴먼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