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라울리를 떠나는 간디, 델리, 인도, 1948,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Magnum Photos
200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프랑스 문화원 지하실에서 정체 모를 나무 상자 두 개가 발견되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이 상자에서는 군데군데 곰팡이가 핀 86점의 프린트가 나왔다. 8명의 사진가가 각기 합판 한 장 위에 사진을 붙여 전시한 뒤, 보관을 위해 조잡하게 사진 크기에 맞춰 합판째 잘라낸 흔적이 역력했다. 당사자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던 매그넘의 첫 번째 사진전의 내막은 마치 사막에서 발견된 미라처럼 무려 50년의 시간을 지나 이런 식으로 출몰했다. 한미사진미술관의 ‘매그넘 퍼스트’는 이 원본을 복원해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다. 화려하고 세련된 최근 전시 경향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이 사진전은 조금 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예산 기획에 가까운 이 전시가 요즘 사진전의 원조 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진다.
이 사진전은 1955년 중반부터 이듬해 초까지 ‘시대의 얼굴’이라는 제목으로 오스트리아 6개 도시를 돌았다. 1955년은 공교롭게도 지금껏 가장 성공한 사진전으로 꼽히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인간가족’전이 막을 올린 해이다. 포토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먼 아방가르드의 성지 뉴욕현대미술관이 진부한 인류애를 소재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매그넘 사진가의 잡지 연재 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덕분이었다.
매그넘은 다시 이 현대미술관의 전시에서 실마리를 얻어 매그넘식 인간 가족전이라 할 최초의 전시를 기획했다. 때는 마침 매그넘의 중심축이었던 로버트 카파와 베르너 비숍이 각기 지뢰 폭발과 자동차 전복으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였다. 이들의 유작전이자 침체된 매그넘의 부활을 다짐하는 이 전시의 압권은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간디의 마지막 모습과 장례식 장면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단식을 끝내는 간디를 촬영하러 갔을 때만 해도 그가 암살을 당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비극적 특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매그넘을 신화화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통과해온 시대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묵직한 서사들이 깔려 있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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