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Moving Nuclear 연작 중 일본 #02, 2013
과거형은 단절이다. 알던 도시는 아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그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거나 아니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우리가 알던 도시’라는 제목으로 강홍구와 박진영이 기록한 도시들을 보여준다. 지진과 해일로 도시가 사라져버린 후쿠시마와 재개발로 몸살을 앓았던 은평 뉴타운은 원인은 다르지만 도시의 실종에 대해 묘하게 보는 이를 자극하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이 실종이 과거형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진행형을 낳는다는 데 있다. 두 작가의 작품 속에 사람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공사장의 철근더미나 폐허 속에 덩그러니 남은 산요 선풍기 등은 과거 그곳에 살았을 어떤 가족, 선풍기 바람을 쐬던 누군가의 운명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다. 그들은 지금쯤 떠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집에 정착했을까. 그리고 상실의 상처로부터 이제는 자유로워졌을까.
그러나 박진영의 ‘움직이는 방사능’ 연작은 우리의 이런 바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작가가 제주도에서 시작해 적도까지 배를 타고 가며 선실에서 찍은 바깥 풍경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파도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잔잔하지만, 사실 이 깊은 바다는 이미 후쿠시마에서 알게 모르게 흘러나온 방사성 오염수의 처리장이 된 지 오래다. 그 위로는 여전히 우리가 원자력 발전을 멈출 수 없는 핑계거리라도 되는 양 무언가를 실은 컨테이너 선박들이 오고간다. 이렇듯 도시의 붕괴는 그 안에 살던 사람뿐만이 아니라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지구 반대편의 이들에게까지 어떤 식으로든 위태로운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감지하는 순간 창 밖으로 바라보는 고요한 바다 풍경 앞에서도 심한 배멀미를 느끼고, 우리가 알던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안녕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송수정 |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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